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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개념 공학과 상식의 차이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개념 공학과 상식의 차이
  • 김재호
  • 승인 2020.10.30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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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그럼 군대 다녀온 나는 비양심적이란 말이냐?』
최성호 지음 | 이학사 | 242쪽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그럼 군대 다녀온 나는 비양심적이란 말이냐?’ 책의 부제는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에 철학자가 답하다’이다. 이 책을 쓴 최성호 경희대 교수(철학과)는 양심이란 무엇인지 성찰한다. 양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을 뚫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따른 대체복무가 제도화되면서
정당한 병역 거부와 불법 행위를 가르는 기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 연합

2018년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 자체를 원천 봉쇄한 병역법 제5조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최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진정 양심에 의해서 병역을 거부한다면,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나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신에 비추어, 그들은 정당한 사유에 의하여 병역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병역법 제5조의 개정 없이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합법화하는 판례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냐는 질문이 자동적으로 든다. 문제의 핵심에는 ‘양심’이 자리한다. 양심은 도덕적 판단, 의지, 욕구를 산출하는 자기의식과 직결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양심은 도덕적 권위를 갖게 된다. 최 교수는 “우리가 양심에 모종의 도덕적 권위를 부여할 때만 우리가 양심의 목소리에 어긋나는 우리의 행위에 대해 때론 자책하고 때론 후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오는 26일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가 시작된다. 교도소에서 36개월간, 하루 8시간 근무다. 이번에 대체복무에 투입되는 인원은 435명이다. 이들은 모두 양심에 따라 대체복무를 한다. 하지만 그 양심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정당화 되는지는 의문이다. 이슬람 국가에선 여전히 양심에 따라 명예 살인마저 자행되고 있다. 

 

양심은 도덕적 판단 이상의 의미

최 교수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 추정 ∼ 1274)를 인용해 잘못된 양심이 결국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잘못된 양심도 분명 양심이기에 도덕적 권위를 갖지만, 이에 따라 행동을 하든 안 하든 죄를 짓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단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성의 작용에 따른 양심과 도덕적 권위를 따르기에 아퀴나스의 입장은 주지주의적 접근이다. 칸트(1724 ∼ 1804)는 ‘내심의 심판관’을 내세우며 주지주의의 맥락에 서 있다. 그 양심이 옳고 그른지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연마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이면 객관적으로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한 셈이다. 완벽한 이성이 불가능하기에 이제 의지에 따른 양심을 주장하는 주의주의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 도발적으로 주장하듯 병역 이행자들은 비양심적인가? 저자인 최 교수는 상식적 양심의 개념 하에서는 불만을 갖는 게 지극히 타당하지만, 헌법재판소의 법적 양심 분석에 따르면 부당한 것이다. 최 교수는 이를 위해 개념 공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라는 사실과 나의 병역 이행이 양심적이라는 사실이 서로 충돌하지도 않는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의 병역 이행이 비양심적이라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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