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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동일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몸의 동일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 임일환 한국외대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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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사이버 시대의 인격과 몸』| 김선희 지음| 아카넷 刊| 2004| 320쪽

▲ © yes24
지난 7~8년간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됐던 김선희 교수의 연구와 지적 모험의 땀이 한 권의 작품으로 결실이 맺힌 것을 보는 건 아카데미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 책은 컴퓨터 혁명과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에 걸맞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실은 이 책이 노리는 화두는 고전적인 주제다. 책머리가 간명히 밝히듯,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는 어찌 보면 인류의 영원한 의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2천 8백년 전 청년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고민했던 이 문제는, 사이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어려운 사색의 동기를 이루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저서는 물론 이 고전적인 주제에 대한 새로운 ‘현대적인’ 접근이다. 책의 부제 ‘사이버 자아의 인격성 논의를 중심으로’가 암시하듯, 이 책은 ‘인공지능, 사이버 보그, 사이버 자아’의 인격적 지위에 대한 논란이 책의 중심테마를 이루고 있다. 저서는 총 7장으로 이뤄졌지만, 크게 논저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1부는 인격 혹은 자아의 동일성의 철학적 개념 자체를 논하며, 2부에선 1부를 통해 밝혀진 자신의 철학 이론을 인공지능, 인조인간, 사이버 자아라는 현대적 주제에 적용시켜보고 있다. 이 논저는 일반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려해 본 독자가 있다면, 이 연구서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오한 문제이며, 이에 대한 지적 탐험이 얼마나 흥미진진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철학에서 흔히 인격의 동일성 문제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수수께끼에서 출발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브라운과 존슨이란 학생 둘이 각각 자동차로 등교하는 도중에 정면충돌사고가 발생했다고 상상해보자. 불행히도 사고의 결과 브라운은 머리 이하 몸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머리와 두뇌, 따라서 의식은 살아있는 상태이고, 존슨은 머리 이하 신체는 말짱하지만 머리와 두뇌는 완전히 망가져서 뇌사 판정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의료기술이 훨씬 진보한 사회에서 만일 의사가 정상적인 존슨의 몸에 브라운의 머리와 두뇌를 연결해서 ‘브라운머리+존슨 몸”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수술에 의해 살려낸다면, 이 살아난 사람은 브라운인가 존슨인가 아니면 제 3의 사나이 ‘브론슨’인가.

하지만 위의 수수께끼의 답이 브라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김 교수의 책을 한번은 읽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핵심테마는 바로 ‘당신의 이런 생각이 왜 틀린 것인가’를 논증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타이틀이 암시하듯 저자는 결국 ‘심리적 연속성’이 아니라 몸의 연속성, 즉 ‘육체적 연속성’이 수술 전의 인간과 수술 후의 인간의 동일성을 확보한다고 믿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당신의 상식적 답변이 무언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적인 직관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그 당신이 당신인가. 당신은 실은 ‘노유연’인데 머릿 속으로만 ‘노무연’라고 평생을 속아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의문과 자아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궁금한 사람에게 나는 김교수 역저의 일독을 권한다.

임일환 / 한국외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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