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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과 동양평화의 사도 안중근
한국 독립과 동양평화의 사도 안중근
  • 이혜인
  • 승인 2020.10.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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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하얼빈 의거를 단행하고 인류의 평화를 꿈꾼 안중근
저자 오영섭|역사공간|176쪽

상무적 기질과 가풍을 이어받은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대장부의 기상을 드날리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어린 시절 천주교를 수용하여 빌렘 신부를 도와 동포를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하면서 인간의 영혼과 육신, 현세와 내세,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구원하고자 하는 신앙관을 가지게 되었다.

안중근은 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민족정기를 진작하는 동시에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단순한 지식 배양에 그치지 않고 민족 위기를 극복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찾으려는 의지의 발로이자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로써 교육·계몽활동을 국권회복운동으로 승화·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한편 안중근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연해주 각지를 돌아다니며 의병 봉기를 촉구하고 교육 발달과 실업 진흥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하고 이주한인들의 조국정신 배양, 결속 도모, 환난 구제를 표방하며 결성된 단체인 '동의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1909년 2월 15일 연추에서 김기룡 등과 함께 일심회를 조직하여 평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스스로 맹주를 맡은 단지동맹을 통해 몸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살아온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하얼빈 의거를 단행하였다. 이는 한 개인의 단발 행동이 아니라 일제의 한국 침략에 분개하는 모든 한국인들의 염원을 모아 치밀하게 추진한 조직적인 행동이었다. 뤼순감옥에 수감된 안중근은 1909년 11월 3일부터 12월 21일까지 수많은 신문을 받았고 1910년 3월 26일 일제 관동도독부 뤼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안중근이 꿈꿨던 동양평화사상은 동양 3국이 각기 평등한 상태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평화공존과 수평적인 연대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동양 3국이 자주와 독립을 유지한 상태에서 나라를 운영해가는 것을 동양평화라고 보았으며, 만일 어느 한 나라라도 자주와 독립을 상실한 상태에 놓여 있으면 동양평화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보았다. 대동단결에 의한 자유와 행복은 곧 평화를 수반하는 것이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를 위한 충언은 미완성인 한국독립운동을 견인하는 든든한 밑거름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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