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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살을 가진 여성의 역사
피와 살을 가진 여성의 역사
  • 문옥표 정문연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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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한국여성사(1~3)』(아시아여성연구소 지음, 숙대출판부 刊, 2004, 398쪽 내외)

문옥표 /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인류학

정치학, 교육학, 관광학, 국문학, 불문학, 의류학 분야에 종사하는 중견, 소장학자 아홉 명이 공동의 팀을 이뤄 일제 식민지기 한국 여성의 역사를 ‘정치?사회사’, ‘문화사’, ‘인물사’의 세 권으로 엮어냈다. 그 목적은 남성의 공식역사에서 소외됐던 여성을 역사의 주체로 살려내고, 그들 사이의 다양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식민시대 여성의 주체적 삶을 재발굴하는 것이었다 한다. 그를 위한 방법으로 거대담론을 해체하며, 미시사를 통해 전체사를 완성해 가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독립유공자에서 해녀, 패션 디자이너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 관한 구술생애사를 채록했으며, 그 외에도 여성들과 관련된 많은 사진, 화보, 신문기사 자료들을 수집했다. 사실 이 정도의 자료들을 모아 한 데 정리해 엮는 일은 일년간의 작업으로는 벅찬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러한 노력만으로도 이 작업은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너무 서둘렀던 탓인지는 몰라도 이 세권에서 만나는 한국여성사는 저자들이 애초의 의도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역사는 단일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이야기인 복수의 역사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사’와 ‘문화사’에서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을 구체적 삶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 볼 수 없다. ‘문화사’에서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자들 자신도 확실치 않은 듯하며, 또한 미시사를 지향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은 여전히 식민지 가족법, 호주제도 시행의 대상으로, 경제수탈 및 노동력 동원의 대상으로, 농촌피폐의 희생자로 얼굴 없는 다수로 머물러 있으며, 저자들은 권위를 가지고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이들의 삶에 하나의 해석을 부여한다. ‘인물사’에서 비로소 우리는 여섯 명의 살아있는 여성들의 삶을 만나게 되지만 이것도 역시 아직 학문적으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일차자료의 제시에 그치고 있다.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새로 쓴다는 명분아래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시도들은 주로 여성을 억압해 온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이었다. 이제 우리는 피와 살을 가진, 도덕과 감정과 판단력, 협상력, 전략을 가진 살아 있는 개인으로 여성들이 그러한 구조를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냈는가, 그리고 그러한 삶들이 전체 역사의 흐름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알고자 한다. 이 책들의 저자들이 애초에 계획했던 것도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자료 수집 이외에 좀더 시간을 가지고 치밀한 방법론적 논의와 개념검토를 병행해 진행했더라면 연구의 본래 의도를 보다 충실히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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