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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 展(3.26~4.18)을 보고
미술비평: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 展(3.26~4.18)을 보고
  • 장정란 미술평론가
  • 승인 200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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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국화 지점은 어디인가?

김병종은 한국화 화가로서 한국화의 자생성추구의 선구자, 한국美 탐구의 주자로 불린다. 어떤 평자는 그의 그림을 컨템포러리하면서 토착적이라는 최고의 찬사도 던진다. 아마도 이 말은 이 시대 한국화 화가들이 꿈꾸는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컨템포러리한 것이며 무엇이 토착적인지가 문제일 것이다.

김병종이 스스로 자신을 ‘퇴락한 종가집 종손’이라 칭하며 때때로 대문밖의 눈부신 공간으로 나가고 싶었다고 기술하는 것은 이 시대 대부분 한국화 화가들의 심정일 것이다.

화려하고 다양한 조형어법이 만개한 신사조의 현대미술 속에서 한국화라는 명칭을 부여잡고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칭찬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옷을 바꿔 입고 모던을 자처하며 정체불명의 조형들을 쏟아내는 부류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동양권에서 현대미술이 가장 대접받는 이 시대 우리나라 화단에서 한국화를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형벌이다. 자생적인 회화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우리는 언제나 정체성에 시달렸다. 그러나 조선문인화에서 그 본을 보고자했던 월전이나 조선민화에서 바보산수를 끌어냈던 운보, 서구적인 조형성과 필묵의 조화를 시도했던 묵림회 회원, 수묵화 운동 등 그들의 완성과 미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국화에 대한 시대적인 시도가 있어왔다.

김병종의 위치는 이들의 연장선에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先學들이 비교적 단순한 조선문인화나 민화, 구상과 추상, 수묵과 채색 등의 방법론에서 새로운 화면을 추구했다면 김병종의 그림은 다소 복합적이라는 점이 차별적이다. 이것은 그들보다는 다양한 문화세례를 받은 것에서 기인할 것이나 오히려 그가 추구하는 세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이번전시의 주제는 10년 이상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생명의 노래’로 그가 기술했듯이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온 후의 세상에 대한 다분히 자전적인 찬가다. “십년간 신주 받들듯 애지중지하는 화론의 퀘퀘한 서적들을 불태우고 일어섰다. 나는 참으로 아이처럼 자유롭고 싶었다”라는 고백대로라면 화면에 등장하는 아이는 자신일 것이다. 아이는 바다와 물고기와 말과 어울려 자유롭게 놀고 있다. 이런 단순한 화면경영이 이번 전시그림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이의 이같은 행동들은 그가 얘기하는 “동양의 시각으로 아시아적 세계관으로 보편의 세계를 바라보려는 전에 없던 비장한 생각”으로 읽혀지지 않는다. 아이의 천진함이나 자연과 함께 조화되는 춤추기가 동양의 사유라면 ‘해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최남선의 詩 제목을 차용한 것은 어떻게 이해되어야하는지.

토장국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닥종이로 판을 만들고 한국적인 색채를 의도하지만 이전의 바보예수전이나 생명의 노래전이 모두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한다고 말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東西의 구별은 19세기 이래 가속화된 물질적 조형사고의 장난이며 감수성은 경계가 없다고 하면서 ‘탈중국 비서구’를 위해 고구려벽화와 조선문인화의 정신에 노는 아이이고 싶다는 기술은 어떻게 이해되어야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런 혼란은 그림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봄봄’과 ‘춘삼월’은 한글과 한문인데 다른 뜻인지. ‘망망대해’, ‘유천희해’, ‘만화방창’ 등의 한문용어와 ‘산무어 무인무’, ‘산무수 무인무’라는 용어, 그리고 화면에 제발처럼 쓰여진 한문-호접몽, 어락-들은 감상자의 상상에 따라 장자사상까지 갈 수 있는 것들이다. 설명문 없는 제목들 ‘천마’, ‘봄날은 간다’, ‘물망초’, ‘해에게서 소년에게’등 고전, 근현대가 혼용된 제목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병종은 그의 화면에 동양의 모든 시대를 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그가 동양의 시각으로 읽고자 하는 보편적인 세계는 무엇인가. ‘탈중국 비서구’는 어디서 읽혀지는가.

화면에 등장하는 물고기나 나비, 천년 전의 탑들이나 천마, 물과 숲과 아이의 어울림 등은 역사와 현재를 혼용하고 그 긴 시간을 오가며 생명을 노래하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그가 의도한 동양의 시각으로 보는 보편적 세계와는 다르게 아주 개인적으로 읽혀지는 건 10년 이상 ‘생명’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집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그가 그려왔던 바보예수나 황진이, 춘향이 등은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인물들인데 이후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김병종은 시대를 버리고 원초적인 생명 찬미자가 된다. 그리고 모든 시대를 아우른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의 그림들은 생기발랄한 필법과 한국적색채 구현을 위한 꼼꼼한 닥판제작의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유의 복합성으로 의문을 던진다. 그의 한국화의 지점은 어디인가.

장정란 / 고려대 미술비평

필자는 성신여대 미술사학과에서 ‘이가염의 이강산수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예술의 황제 송 휘종’, ‘이가염의 산수해석’, ‘이유태와 부포석의 미인도 비교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는 ‘중국현대 산수화의 대가 이감염’이 있다.

김병종(1953∼)

김병종은 지난 1990년대 이후 '생명의 노래'시리즈를 통해 새, 물고기, 꽃, 나비, 말, 아이를 형상화하며 자연과 사람에 대한 경의의 마음을 표현해온 대표적인 한국화 작가다. '바보예수' 연작 등 1988년 암울한 시대상황을 패러디하던 화풍에서 지금의 분위기로 바뀐 것은 연탄가스로 인해 죽음 문턱서 회생한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그의 근작들은 피악(FIAC) 바젤 등의 아트 페어에서 한국화가로서는 드물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라는 화두를 들고 고민해 온 그의 그림은 절제와 자유, 세속과 탈속 등 상반된 가치들이 교묘하게 오가는 것이 특징이다. 소나무와 강과 숲과 구름과 바람이 소년, 나비, 물고기와 더불어 생명의 기쁨으로 뒤엉켜 있는 화면에선 시간을 잊게 하는 평온함과 物我合一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또 누르스름한 닥종이 바탕에 거칠지만 강한 필선에는 고구려 벽화부터 조선 문인화, 민화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고 끈질기게 공부한 그의 이력이 고스란히 肉化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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