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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변함없는 초심
나의 강의시간-변함없는 초심
  • 박순준 동의대
  • 승인 2004.04.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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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준 (동의대 사학)

내가 가르치는 분야는 학생들이 암기과목으로 여겨온 역사과목인데다 외우기 힘들어하는 서양사다. 그래서 강단생활 17년 동안 줄곧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편견도 걷어내면서 동시에 학생들이 흥미롭게 강의에 다가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고 고민해왔다.

강단에 처음 섰을 때만 하더라도 오로지 정열과 의욕만으로 모든 것에 임했다. 패기는 넘쳤지만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수업을 이끌어갔다. 학생과 함께 하는 수업이기 보다는 혼자 열 올리는 강의였던 셈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모든 시험을 오픈북으로 치렀다. 시험도 수업의 연장이라는 생각과 역사는 암기과목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의 결과였다. 동일한 명칭의 과목일지라도 강의내용을 바꾸고, 문제형태도 일종의 두뇌싸움인 듯이 매번 달리했기 때문에 시험문제는 학생들 사이에 족보로 내려올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강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미지와 영상 활용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를 교수법의 기조로 삼아 철저하게 이미지 기반의 강의를 진행했다.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보드 위에 OHP로 컬러와 흑백의 그림 자료을 보여주고, 영화의 단편적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줬다. 그러다보니 강의방법은 물론이고 강의 내용도 크게 변하게 됐다.

자료를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개설했던 홈페이지를 학기마다 직접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학생들과의 대화를 온라인으로 차츰 옮겨갔다. 강의에 관한 질문답변은 물론이고 학생이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의 주제를 온라인에서 상담했다.

 

참고자료를 의논하거나 제공하기도 하며, 전자우편으로 접수된 학생보고서 결과들을 웹으로 공개해 학생들의 평가를 유도하기도 했다. 덤으로 온라인 강의실에 동영상 강의를 올려 중요한 부분은 온라인 형태로 복습하도록 배려했다.

이제 강의 내용도 변해야 했다. 역사과목도 실용적인 분야가 될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설득하고 싶었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한다는 학생들에게도 인터넷 생활과 교육 사이에 괴리가 있듯이, 교수들에게도 연구와 교육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역사 응용분야를 개발해 연구와 교육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강의내용을 듣는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든 응용적인 결과를 내놓는 쪽으로 강의 형태를 개발해갔다. 그날의 강의 주제와 간단한 질문을 기재한 시트지를 나눠주고, 강의가 끝나면 그것을 회수해 피드백하면서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식으로 설득 작업을 벌여 나갔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 학생들의 미래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학생들의 기대를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들에 답을 얻으려 노력했다.

교육학에서 거론되는 ‘문제해결중심 교수법’도 도입했다.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풀어야 하는 개별과제, 오프라인에서 그룹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 그리고 강의를 통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제들로 나눠 수업의 밀도를 높이려 했다. 그 과제들은 학생의 미래를 겨냥해 역사학을 통해 응용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나갔다.

이번 학기에는 실무프로젝트 수업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 기업체 CEO를 섭외해 과목내용과 관련된 현실의 변화를 체감케 해, 과제를 현실적인 프로젝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지금도 나는 강의실에서 눈에 빛을 발하며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의 비젼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강의에서만큼은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변하는 그들이기에, 나의 바람은 오로지 하나다.

 

강의가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교양으로서만이 아니라 전공자인 경우에는 강의에서 착안한 것을 작품으로 내놓고 상품으로 개발하는 창업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포함돼 있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의 정열과 의욕이 지금에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겠지만 초심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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