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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 모음 2001~2020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 모음 2001~2020
  • 교수신문
  • 승인 2020.10.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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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외 37명 지음 | 현실문화A | 616쪽

‘꽃을 따서 묶은 것’, 곧 꽃다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안톨로기아(anthologia)를 어원으로 갖는 선집(anthology)이라는 말은 특정한 주제 혹은 시기를 중심으로 여러 작가의 작품이나 여러 필자의 글 중 정수만을 선별해 모은 책을 가리킨다.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 모음 2001~2020』은 부제가 알려주듯 양혜규라는 미술가에 관한 글 모음집이어서 일반적인 선집에 견주어 더욱 이채롭다. 한 미술가에 대한 비평 모음집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쉽게 접하기 힘들다. 여러 이유에서 결코 녹록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양혜규는 지난 25년간 국내보다는 국제 무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쳐왔으며,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 그의 작업에 관한 대부분의 비평 텍스트 역시 해외 출판물을 통해 생산된 탓에 국내 독자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국내에서 발간된 도록과 모노그래프가 없진 않으나, 모두 작가의 몇몇 특정 시기의 작업에만 국한되어 있어, 그의 방대한 작업 세계와 왕성한 활동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개인전 O2 & H2O를 계기로 큐레이터, 편집자, 작가가 엮은이로 참여한 이 선집은 그간 해외 출판물에 소개된 방대한 양의 비평 텍스트와 에세이에서 36편을 엄선해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주목할 부분은 각각의 글 앞머리에 엮은이가 마련한 필자 소개란이다. 필자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힘든 통상의 선집과 달리, 이 책에서는 필자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제공됐으며, 특히 작가와 필자 간의 만남과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계기를 통해 각각의 글이 집필되었는지 상술돼 있다. 그로써 작가의 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나마 국제 미술계라는 미술 생태계 혹은 미술 공동체가 작동하는 방식과 현장감도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가 주가 되는 비평 선집이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도판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도판만 일별해도 작업 궤적의 굵직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도판 구성에 상당한 공이 들어갔다. 물론 도판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의 보조적 장치로 마련된 것으로서, 관련된 작품이 언급되는 자리 부근에 수록되어 텍스트의 이해를 돕는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공기와 물’은 본래 2002년에 제작된 작품의 제목이자 그해 열린 전시의 제목이었다. 당시의 제목은 ‘공기와 물’이라는 말을 통해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의 문화적 특성에 주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기와 물’은 2020년의 시점에서도, 그의 개인전의 제목 O2 & H2O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의 주제가 진화하고 선회하고 전환하고 변화하는 양혜규만의 사유 과정을 보여주는 두드러진 예시이자, 기후 위기, 재난 등 점차 극단으로 치닫는 동시대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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