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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을 말하는 노자와 루소, 이단이 되다
성선을 말하는 노자와 루소, 이단이 되다
  • 김재호
  • 승인 2020.10.23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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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노자와 루소, 그 잔상들
노자와 루소, 그 잔상들 | 정세근 지음 | 충북대학교출판부 | 278쪽

무위자연과 일반의지
두 철학자, 노자와 루소
인간성을 신뢰하다

 

노자는 ‘무위자연’, 루소는 ‘일반의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 둘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 저자인 정세근 충북대 교수(철학과)는 노자와 루소가 오롯이 성선의 길을 걸어갔다고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노자와 루소를 동서양의 철학사의 관점에서 비교해 그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제 형태로 집필했다. 


『노자와 루소, 그 잔상들』은 노자와 루소에 관한 아포리즘(경구)다. 성선과 성악이라는 구분 아래, 노자와 루소는 인간을 믿었다. 동양에서 인간성을 믿은 사람은 노자를 비롯해서 맹자로 이어지는 성선설을 따른다. 서양에선 인간성을 믿는 철학자가 보기 드물다. 정세근 저자는 루소야말로 인간성을 신뢰한 거의 독보적인 철학자라고 간주한다. 한 평생을 방랑하고 방탕하기까지 한 루소의 삶을 보면, 자신의 고통을 넘어 인간성에 기대고자 한 건 아닐까. 


정세근 저자는 “한 명제를 읽을 때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하라”면서 “노자와 루소를 넘어 그대들의 무한, 아니 그 너머까지 나아가보길 고대한다”고 적었다. 명제는 옳고 그름을 따져볼 수 있는 문장들이기 때문에, 이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곱씹어서 읽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노자와 루소는 인간성을 신뢰해 성선의 길을 걸어갔다고 정세근 교수는 강조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진위 판별의 명제들, 스스로 판단하라

 

책에는 노자와 루소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명제들이 번호가 매겨져 등장한다. 예를 들어, “1.0423 노자의 무위자연은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솔직하라’는 원칙이다. 남을 어쩌고자 하지 말고(무위), 네 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자연).”식이다. 이 명제들의 진위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한다. 


또한 “4.091 노자와 루소의 대전제, 사람을 믿으라. 그것이 성선이다. 아이를 믿으라. 잘 클 것이다. 그것이 성선의 교육이다. 4.092 내버려 두어도 잘 클 것이지만 믿고 사랑하면 더 잘 클 것이라는 것이 성선 교육론의 요체다.”라는 식으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명제로 제시한다. 우리들의 아이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믿어야 한다면 얼마만큼 믿어야 할까. 


정세근 저자는 ‘말에 대한 말’을 강조한다. 그는 “언어란 대상을 지칭하는 소리(parole)가 아니라, 어떻게 대상을 지칭하느냐는 문법적 체계(langque)일 수밖에 없다”면서 “말은 원시의 언어와 문명의 언어로 나뉘기보다는 평등한 언어와 불평등한 언어로 나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말을 아는 건 ‘말에 대한 말’, 즉 한글의 문법적 체계를 아는 것이다. 아울러, 말은 문법, 소통, 교환, 권위, 권력, 지배, 법률을 담기에 더욱더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에 대한 말이 자국어, 말은 평등해야

 

『노자와 루소, 그 잔상들』은 각 장의 제목들과 소제목들만 보아도 의미가 있다. △ 1장 세계는 성선과 성악의 싸움이다 △ 2장 국가는 인식의 산물이다 △ 3장 불평등은 인위다 △ 4장 사람은 자신을 사랑한다 △ 5장 자연은 야생이 아니다 △ 6장 선악은 없다. 특히 ‘1.3 성선의 전통은 학교를, 성악의 전통은 감옥을 세운다’, ‘2.3 국가는 필요악이다’, 5.2 우러나오는 느낌을 따르자‘는 곱씹어 볼만하다. 


정세근 저자는 이 책에서 자연법의 세 원리와 자연의 세 덕을 강조한다. 전자는 ▷ 사람을 살려라 ▷ 귀천은 없다 ▷ 나는 나를 사랑한다, 후자는 ▷ 어머니의 사랑 ▷ 느낌 ▷ 어린 아이를 제시했다. 정세근 저자는 자기애에서 자기존경으로 나아가야 하며,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자유는 평등할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노자와 루소, 그 잔상들』의 표지는 북두칠성(北斗七星)과 큰곰자리(URSA Major)다. 일부러 한자와 영어를 섞어서 쓴 듯하다. 정세근 저자에 따르면, 서양의 별자리에 북두칠성은 없다. 북두칠성은 큰곰자리의 꼬리일 뿐이다. 보고싶은 대로 보는 것뿐이다. 기자도 한참이나 본 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동서양의 시각 차를 드러내준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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