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1-30 17:51 (월)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역사적 상흔과 치유의 조건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역사적 상흔과 치유의 조건
  • 교수신문
  • 승인 2020.10.21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 고통 이해하고 트라우마 치유하려면 가해자 고통에도 주목해야
해마다 5·18 추모기간에만 과시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불충분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혹은 태도의 변화는 불가피하겠다. 최근 제1야당 대표(비대위원장)가 광주 5·18민주묘역에 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 것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이 두어 차례 같은 장소를 찾아 사죄를 한 것 등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그들의 속내까지야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것이 진정성 있는 행위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울컥 눈물을 보였다는 것에 대해서도 미덥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정치인들의 제스처가 얼마간 가식적이었다는 학습효과도 있는 터라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것보다야 어쨌든 진일보한 것이기는 해서 얼마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역사적 상흔을 치유해나가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는 하겠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신군부의 주요 인사들은 5·18과 관련한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형편이니 비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5·18때 계엄군으로 광주에 내려왔던 군인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의 논의가 필요하다. 5·18과 같은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trauma)는 상당하다.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폭력에는 피해자의 존재, 행동 그리고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폭력은 혼돈의 위협을 이끌어내며, 그 혼돈의 위협 속에서 인간 본래의 정체성을 파괴하게 한다. 

따라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피해자들의 온전한 치유와 진정한 역사적 화해의 길이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죄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가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순원의 단편소설 「얼굴」은 광주 청문회가 방영되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진압군으로 참가한 7공수 출신의 은행원 ‘김주호’의 고통과 죄의식,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그리고 있다. 일반병으로 입대했다가 차출돼 공수부대원으로 광주에 투입되었던 그는 훈련된 군인으로 명령에 따라 광주 현장에서 데모 군중에게 적개심을 갖고 폭력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그것이 결코 떳떳하지 못했던 일임을 깨달으며,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자신의 경력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특히 그가 사회에 나와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 ‘박영은’이 광주 출신이고 그녀의 오빠가 당시에 죽었다는 말을 들은 후 과거의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그를 괴롭힌다. “혹시 광주에 가보신 적 있으세요?” 하고 그녀가 묻는다. 그가 대답한다. “아뇨, 아직 한 번도.” 이 소설의 문제적 상황은 여기에 있다. 삶은 광주의 피해자들에게만 남겨진 것이 아니라는 것, 가해자들에게도 시간은 펼쳐져 있고 그들 또한 살아가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진정한 가해자인가” 하는 물음을 이 소설은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는 없고 폭력의 하수인만 다시 드러나는 현실, 이것이 광주의 비극을 안고 있는 우리들의 고뇌라는 것, 살아남은 자 그 누구도 이 죄의식의 상흔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어쩌면 5·18은 영원히 치유되기 힘든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는 트라우마(Trauma)의 치유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복원을 모색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두 번 5·18묘역을 찾아 사과하거나 해마다 5월의 추모기간에만 과시적 행사로 역사적 상흔을 소비하는 것으로는 어림없는 일이겠다.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