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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가을, 책이 필요하다
[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가을, 책이 필요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10.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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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즐기면 어느 순간 지혜가 내면화돼
칼 슈피츠버그의 작품 인기리에 복제

미모와 지성까지 두루 갖춘 퐁파두르 후작부인
방대한 지식을 활용해 루이 15세의 지지자 역할
'책벌레'-1850년경, 캔버스에 유채, 49x27, 독일 슈바인푸르트 게오르그 세퍼미술관 소장.
'책벌레'-1850년경, 캔버스에 유채, 49x27, 독일 슈바인푸르트 게오르그 세퍼미술관 소장.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있다. 가을이 기척도 없이 다가 온 것이다. 가을은 온 산하가 아름답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안에 있으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을의 아름다운 정취를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야 하기에 산으로 들로 나가게 된다. 

볼 거리가 넘쳐나는 가을에 책을 읽지 않아서 탄생하게 된 것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가을만 되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가장 안 읽는 계절이 가을이라서 그렇다. 

책을 읽는 것은 생활이여야 한다.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에게 책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지혜를 선사한다. 지혜는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샘이다. 그렇기에 책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장군과 같으며 책을 읽지 않는다면 삶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꼭 머릿속에 뭔가 하나라도 얻어야만 책을 읽은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어야 한다는 교육 때문이다. 책 읽기를 통해 지혜를 꼭 습득해야만 하는 사람 역시 책을 많이 안 읽은 사람이다. 

지혜는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만 지혜가 자신의 것이 된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책속에서 꼭 지혜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즐기면 어느 순간 지혜가 자기 것으로 되는 것을 안다. 

책 읽는 것은 생활이어야
책을 즐기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말아야 한다. 거실, 침실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책을 놓아두면 되는 것이다. 책은 성지를 바라지 않고 손과 눈을 필요로 할 뿐이다. 책은 생활이기 때문이다. 

책에 빠져 있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슈피츠버그의 「책벌레」다. 이 작품은 책에 대한 유별난 애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도서관 천장이 닿을 듯 높은 책장 한 가운데 노학자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다. 그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햇살에 의지한 채 왼손으로 책을 펼쳐서 읽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다른 책을 잡고 있다. 

천장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부드럽게 책장의 책을 비추고 있다. 노학자가 읽고 있는 책, 옆구리에 끼고 있는 책, 들고 있는 책은 책에 대한 탐욕을 나타낸다. 지식의 보물을 한 번 맛보면 절대로 놓지 못한다. 이 책 저 책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칼 슈피츠버그(1808~1885)의 이 작품에서 사다리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책에 빠져 있는 노학자의 모습은 지식인을 상징하고 있으면 화면 왼쪽 하단에 있는 지구본은 다양한 책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당시 인기를 끌어 많이 복제되었다. 

우리의 위험한 선입관 중에 하나가 미인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사실 미모와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인은 왠지 책하고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미인이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줄 안다.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어디까지만 개인적 성향이지 외모와 상관이 없다. 

빛나는 외모만큼이나 지적 호기심이 많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여인이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후작부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부의 한 사람인 그녀가 왕의 사랑을 19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이었다. 대부분 왕의 정부는 눈에 띄는 외모만 가지고 왕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지성이 없이는 왕의 사랑을 오랫동안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궁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루이 15세의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쥔 그녀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궁정에 있는 자신의 서가에 3500여권에 이르는 장서를 꽂아두고 지식의 목마름을 해결했다. 그녀는 루이 15세에게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 조언했다. 또한 그녀는 정치뿐만 아니라 당시 루소 등 철학자들과 원활하게 교류도 하면서 백과사전 출판에 관여했을 정도로 책 출판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살롱에서 예술가들과 학자들과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 정보를 교환했었다. 그녀에 의해 만들어진 살롱문화가 오늘날까지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 이어져 오고 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과 지식인들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라 투르의 「마담 퐁파두르」다. 

'마담 퐁파두르'-1775년, 종이에 파스텔, 1700x128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마담 퐁파두르'-1775년, 종이에 파스텔, 1700x128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당대 프랑스 문화를 선도한 퐁파두르 후작부인
책상 뒤로 보이는 짙은 녹색으로 그린 풍경화가 보인다. 책상에는 책제목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을  구아리니의 『파스토르 피도』, 볼테르의 『앙리아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디드로의 『백과사전』이 보인다. 

구아리니의 책은 사냥을 즐겼던 루이 15세의 취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철학자들의 책은 당시 검열대상이었지만 그녀의 지성미를 나타낸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보수 계층이었던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의 혁신적인 사상을 지지했다. 

이 작품에서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가발을 쓰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평상복을 입고 궁정 내실에서 편안하게 있는 것을 나타낸다.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손에 악보를 들고 있는데 그녀는 책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 등에 끊임없이 관심을 많았으며 경직된 왕실의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왕궁에 조그만 극장을 지어 월요일에는 희극을, 수요일에는 오페라를 공연했다. 그녀는 극장주로 만족하지 않고 주인공이 돼 공연까지 했었다. 작은 공연장에서 열린 공연은 인기가 많아 관료들은 초대장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정도다.

모리스 켄탱 드 라 투르(1704~1788)는 전신 초상화를 원한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의뢰 때문에 다른 초상화보다 크게 제작했지만 종이에 파스텔로 그렸기 때문에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 라 투르는 큰 종이가 없어 여러 종이를 붙여서 완성했다.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누구처럼 인생이 더욱 더 풍요로울 수가 있다.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박희숙 화가, 전 강릉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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