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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성은 역동적인 지적 탐구"
"학제성은 역동적인 지적 탐구"
  • 이택광 영국통신원
  • 승인 2004.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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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구소의 성공사례: 영국 셰필드대 바흐친 센터
영국 셰필드대의 바흐친 센터는 1994년, 미하일 바흐친과 그의 저작, 이와 관련된 문화이론, 언어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진작시키기 위해 개소했다. 10여년 동안 바흐친 센터는 명실상부한 바흐친 연구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지난 2월 바흐친 연구소 소장 데이빗 세퍼드 교수와 만나 연구의 방향과 성장 배경을 들었다. 인터뷰는 세퍼드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무슨 이유로 센터 이름을 바흐친 센터라고 했는가?


"나는 바로 그 센터의 명칭 자체야말로 센터의 설립 취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센터 앞에 붙은 바흐친이라는 수식어는 연구의 초점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이론적 사안들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을 제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바흐친이라는 수식어가 일련의 해결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바흐친이 모든 이론적 병폐에 만병통치약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던 시절은 지났다), 문제들의 고리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한국의 대학들은 점차적으로 전통적 학제의 위기에 대응해서 학제간 인문학 연구소나 센터를 설립하는 추세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바흐친 센터가 어떻게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자력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특히 이 문제는 연구비 확보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는가?


"간단하게 답할 수는 없겠다. 바흐친 센터는 처음에 셰필드 대학으로부터 초기 자금 또는 장려금을 지급 받아서 설립되었다. 이런 재정 지원을 통해 바흐친 써클의 작품 또는 그 작품에 관한 자료들에 대한 분석 데이터를 작성하기 위한 4년 단기 고용 연구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초기 자금으로 바흐친 센터는 우수한 박사과정 학생들을 유치해서 박사논문을 쓰도록 조처할 수 있었다(이런 논문은 꼭 바흐친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었고, 이런 취지로 인해 러시아 여성 작가에 대한 연구들이 가능했다). 또한 이 밖에도, 연구 장학금 (이 장학금을 수혜한 피터 스피드웰은, 약대에 속해 있는 정신치료 연구 센터와의 협동과정에서 <시간과 정신의 다성성: 미하일 바흐친의 문화와 미학 이론에 근거한 프로이트, 클라인, 그리고 위니코트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과 여러 집기들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 다른 기금들은 4년 단위로 영국의 인문예술 연구 위원회(AHRB)에서 우수 연구기관에게 지급되는 연구비로 마련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구 장학금을 확보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순수 연구비 이외에 필요한 센터 운영비는 러시아 및 슬라브 연구 학과에서 지급 받거나, 인문예술 관련 타 학과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위해 비평 이론 트레이닝 과정을 마련함으로써 얻는 수입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특히 연구원들을 위한 연구비는 외부 수주를 통해 확보하고 있는데, 주로 AHRB나 레버훌름 재단(Leverhulme Trust)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의 경우와 다른 연구비 확보 모델을 가진 고등교육 체계의 센터들이나 연구소들에게 이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한국의 독자들은 바흐친 센터의 조직 체계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앞서 말한 러시아 및 슬라브 연구 학과와 바흐친 센터의 관계, 또는 연구원들과 학생들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 같은 것에 대해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


"바흐친 센터는 형식적으로 인문학 연구소(http://www.shef.ac.uk/hri/)와 느슨한 협동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및 슬라브 연구 학과(http://www.shef.ac.uk/russian/)의 일부이다. 특정 연구원이나 학생들이 바흐친 센터에 속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이들의 특정한 연구 분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런 관계는 상당히 유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사우쓰 애틀랜틱 쿼털리’와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당신은 바흐친 센터가 앞으로 바흐친에 대한 정보의 허브 노릇을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인터뷰 이후에 6년 가량이 흘렀는데, 한때 당신이 전망했던 청사진은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바흐친 센터가 여전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바흐친 센터는 메일링 리스트와 웹사이트(http://www.shef.ac.uk/uni/academic/A-C/bakh/bakhtin.html)을 통해서 셰필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차원에서 바흐친 연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바흐친 센터가 바흐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흐친 센터가 파놉티콘은 아니니까."


과거에 진행되었던 <미하일 바흐친과 바흐친 써클 작품의 러시아 및 유럽적 맥락>이라는 프로젝트의 제목은 특정한 학문 분야가 학제적 연구와 연결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를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학제적 프로젝트가 인문학이라는 학문분과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 연구 프로젝트는 바흐친과 바흐친 써클의 작품이 인문과학을 구성하는 분과학문의 특정 분야 내로 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분과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이라는 확실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제로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경계들은 인문과학을 사회과학이나 ‘까탈스러운’ 또는 ‘엄밀한’ 과학들과 구분 짓는 것이기도 하다. 이 모든 흥미로운 통찰들이 어우러지면서, 그 프로젝트는 학문분과들의 경계 자체에 내재한 역사와 본성을 드러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크레이그 브랜디스트의 작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다(http://www.shef.ac.uk/uni/academic/A-C/bakh/contexts.html#publications를 참조할 것)."


 올해 부로 시작된 <1917-1938 소련에서의 사회 언어학의 대두: 학파, 이념, 연혁>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좀 설명해달라.


"우리 홈페이지에도 잘 나와있듯이, 이 프로젝트는 앞서 설명했던 바흐친 센터의 <바흐친과 바흐친 써클 작품의 러시아 및 유럽적 맥락>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바흐친 써클에 대한 연구의 주요 사안 중 하나이기도 한, 언어학 학파의 맥락이 지속적인 관심사항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선행 연구의 경험, 대학원생들의 연구를 위한 제반 시설을 갖춘 연구소, 전문적 소장도서와 좋은 연구 분위기가 현 연구를 위한 굳건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책임적으로 맡고 있는 이가 크레이그 브랜디스트라는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야말로, 이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앞으로 전 연구과정을 이끌고 나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제를 좀 돌려보자. 거칠게 말해서, 영국적 바흐친과 미국적 바흐친 사이에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자가 문화적 유물론자로 바흐친을 본다면, 후자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로 보는 것 같다. 두 바흐친 사이에서 바흐친 센터가 취하는 입장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이’가 아니라 ‘위’이다. 바흐친 센터의 역할은 바흐친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또는 서로 다른 바흐친의 판본들(여기에는 ‘러시아적 바흐친’도 포함된다)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다른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편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본다면, 바흐친 센터는 확실히 ‘영국적 바흐친’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에 한국의 학자들이 바흐친의 <라블레와 그의 세계>를 러시아 판본에서 직접 번역했는데, 이들은 영역판의 오류들을 다수 지적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당신도 할 말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흐친 영역본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간단히 말해서 영역본의 수준이 천양지차라고 하겠다. 당신은 이미 1997년에 피터 히치콕과 이루어졌던 인터뷰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거기에서 나는 이런 편차에 대해 말을 했다. 그때 말하기를,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재번역을 진행할 계획(지금 아주 느리게 진행 중이지만)이라고 했고, 이런 재번역은 현재의 영역본 중 특히 문제가 되는 1930년대와 40년대의 원본을 대상으로 해서 철학적 측면을 고려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라블레에 관한 책의 경우, 역시 그때 말한 바대로, 재번역해야한다. 이 책은 몇몇 짧은 부분들이 누락되었고, 출처가 명확하게 예시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재번역은 재편집(출처에 대한 확실한 점검)과 함께 진행되어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근, 몇몇 사람들이 이론의 종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흐친 센터 홈페이지에서 나는 올 여름에 있을 츠베땅 토도로프 학술대회에 대한 소식을 보았다. 공고에 따르면, 이 학술대회의 목적이 “츠베땅 토도로프의 인문과학에 대한 사유에 실려있는 입장과 학문적 공헌의 가치를 살펴보고, ‘비판적 휴머니즘’이 이론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 학술대회가 이론의 종언을 곧 비판적 사유의 종언으로 간주하는 따위의 생각에 대한 학문적 대응이라고 본다. 이 학술대회가 이런 비평적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전망해줄 수 있겠는가?


"이 학술대회는 지금 바흐친 센터에 초빙 연구원으로 와 있는 케런 츠빈덴 박사의 머리에서 태어난 것이다. 츠빈덴 박사는 스위스 국립 연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서 토도로프에 대한 지식인 평전을 쓰고 있다(http://www.shef.ac.uk/uni/academic/A-C/bakh/todorov.html). 이 모든 ‘이론의 종언’에 대한 논의들(‘역사의 종언’과 마찬가지로 -- 후쿠야마를 기억하는가?)은 탈역사화되어 말라 비틀어져버린 이론의 이해에 따라붙는 술어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론의 ‘순간’이나 ‘종언’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그것의 출발점, 말하자면 더 넓은 범위의 지성사라는 측면에서 이론의 자리를 탐색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야말로 바흐친 센터의 <바흐친과 바흐친 써클 작품의 러시아 및 유럽적 맥락>이라는 프로젝트가 염두에 두고 착수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론은 자신을 호명하는 그 순간에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또는 이론은 ‘이론’이라고 불리는 그 찰나에 존재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충분하다는 판단으로 종언을 선언한다고 해서 이론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거리를 두고 조망하는 태도가 여기에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제간 연구를 진작시키기를 원하는 한국의 대학들에게 몇 마디 조언을 주었으면 한다.


"그쪽 학계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대학이나 동료 학인들에게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말해본다면, 間학제성이라는 것은 입에 발린 말로 거론하는 것보다 중요한 무엇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의 경우, 학제간 연구는 통상 장려되면서도, 돈은 대부분 전통적(알고 보면, 그렇게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학제간의 경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지원된다는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학제간 박사논문을 쓰는 학생들이 학위를 받은 뒤에 돌아갈 친정집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명백하게 이것은 현실적 고민거리이다. 그러나 항상 마음에 새겨야할 것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학제간 연구는 어쨌든 학계의 역동성을 담보하는 부품 내지는 영역이고 지적 탐구 자체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명민함과 예민함이다." 


 

인터뷰/정리:  이택광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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