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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골프를 하지 않는 까닭
학이사: 골프를 하지 않는 까닭
  • 공우석 경희대
  • 승인 2004.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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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우석/경희대 지리학

조사를 위해 한라산을 찾을 때마다 1975년에 한라산 백록담의 물로 밥도 지어 먹고, 분화구 안에서 야영까지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요즘에야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복원을 위해 한라산 정상 일대의 출입을 통제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자연생태계에 어떤 부담이 될지 내 스스로 아는 것이 적었고 다른 사람들도 입장도 비슷했을 것이다. 오늘날 한라산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때면 30년 전 내가 만든 상처가 정상의 자연생태계를 훼손과 파괴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다.

학위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한 생물지리학이 선진국에서는 자국의 연구가 정리 단계에 이르러 연구를 위해 해외로 발길이 돌리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기초와 주춧돌 없이 집을 지을 수 없었다.
귀국 후 나이가 들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우선 1천5백미터 이상 산꼭대기의 자연생태계와 경관 그리고 환경을 답사해 조사하는 것을 시작했다. 동시에 국토의 자연사를 알기 위해 화석자료와 고문헌을 바탕으로 과거에 식생들이 변화된 모습을 복원하는 일도 하였다.

야외조사를 위해 여러 날을 산에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장비와 부식 등을 지고 다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고 장마나 폭설이라도 만나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따라서 동행한 학생들이 다음 조사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일이 흔했다. 나와 같이 일하는 것은 3D전공이라는 것이 차츰 알려졌지만 힘을 보태주는 학생들과 함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틈틈이 조선시대 고문헌들을 바탕으로 시대별 식물의 분포와 변화를 분석했는데 내 한문 실력이 부족해 쩔쩔댔던 기억이 새롭다. 야외조사와 실내작업을 같이 해야만 한반도 식생의 변천과정, 현주소와 미래를 알 수 있기에 연구 속도는 더뎠다. 시간이 흘러 작년에 연구년 동안 축적된 자료와 조사 결과를 모아 한반도의 식생사를 정리한 책을 낸 것이 그나마 성과였다.

공부를 통해 깨우친 것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낀다. 10여 년 전에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스스로는 얼마나 지켰는가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 뒤 산지의 환경에 부담을 주는 스키, 골프를 배우지 않기로 약속하고,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우리 농촌을 힘겹게 하는 커피 마시는 것을 끊고, 수질오염을 가져오는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등 몇 가지를 실천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요즘은 백두대간과 한라산 정상에 격리되어 자라는 식물들이 기온온난화가 계속될 때 맞게 될 운명과 고산과 아고산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복원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 분야에 대한 공부도 부족한 사람이 여러 요인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흔히 강조하는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던 참에 공동 연구 제안들이 오가고 있다.

아직 휴전선 이남의 산들에 대한 연구도 끝나지 않았는데 국토의 나머지 반쪽으로 2천m 이상의 산이 60여개나 되는 북한의 고산대과 아고산대에 대한 조사 연구를 꿈꾸는 것은 과욕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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