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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으로부터의 탈주는 가능한가
민족으로부터의 탈주는 가능한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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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 : 탈민족 주장 담론의 몇가지 풍경

▲ © yes24

 

 

 

 

 

 

 

10년 전만 해도 이 땅의 민족주의는 모든 이념적 제도 앞에서 군림한 두목이었다. 지금은 물론 그 중심성을 심각하게 잃고 피사의 사탑처럼 위태롭게 기울고 있지만 말이다. ‘국익’으로 상징되는 ‘국가주의’는 상황이 더하다. 이 땅 곳곳에서 돋아나는 ‘개인’의 권익에 밀려 중국이나 일본으로 망명이라도 할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사실 과장된 것이다. 아니 에토스로만 존재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 생각들은 최근 출간된 세 권의 책 ‘국민으로부터의 탈퇴’(권혁범 지음, 삼인 刊),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탁석산 지음, 웅진닷컴 刊),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임지현·이성시 엮음, 휴머니스트 刊) 등의 책갈피에 존재하는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폐기돼야 할 차별적 이데올로기

먼저 개념정리부터 하자. 이 책들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민족이나 국가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민족과 국가가 하나의 고안물이고, 상상 속에서 강화된 이념적 제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의 탈퇴’가 ‘박정희’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적 국가동원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반발하는 책이라면,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는 세계체제가 시민국가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그 세계의 동질적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벗고 ‘세계시민적 주체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뒤이어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는 민족과 국가라는 상상적 제도의 ‘창립주주’쯤 되는 ‘國史’(National History)를 해체해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라는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주장들은 낯선 것이 아니다. 학술적 담론 속에서 강하게 존재하던 생각들이 이제 대중적 담론 속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과정선상에 이 책들은 놓여있다. 이 담론들도 주장된 지 7년은 된 것 같다. 먼저 그 시간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우리 사회가 ‘식민주의’의 안티담론이었던 ‘탈식민주의’가 갖는 모순을 정확하게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탈근대는 이른바 근대의 도플갱어였던 것이다.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만, 안으로는 ‘국민’에 속하지 않는 배제된 개인들에 대한 억압의 도구로 쓰인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비판은 존중될 만한 것이다.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의 주장은 이렇다.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국가와 긴장관계를 갖는 사회의 ‘시민의식’과 독립적인 개체의식을 약화시킨다는 게 나쁘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주의는 폐기,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인정, ‘국민’도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두지만 그 국민의 내부는 민주와 합리, 개인의 자율로 상징되는 ‘시민’의 정체성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발독재와 군사안보국가, 그리고 자생적 시민계급의 부재는 한국에서 독특한 국가주의적 문화를 만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국가적 정체성을 퇴출시키고 그 자리에 시민적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다소 성급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등 기존 국가를 구성하던 제도들이 아주 활발하게 재편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네이션-빌딩’(nation-building)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즉, 극소수 지배집단이 유포한 국가주의에 의해 구성된 ‘국민’이 아니라, 개별적 자아들이 스스로 국가의 필요성을 깨닫고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공적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서의 ‘재국민화’ 말이다. 이것이 사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제도적 틀이 아직까지 완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월드컵이나 광범위한 대중집회 등에서 동원민족주의의 잔재를 읽는 시각도 있는데, 비록 이것이 ‘우리’라는 소박한 이분법에 기반한 배타성을 드러내고, 그래서 세련되지 못하고 다소 폭력적으로 기능하는 면이 있더라도 그것의 쓰임새를 통째로 부정하는 태도는 수긍하기 힘들다.

긴 안목 그러나 냉정한 현실

이런 문제는 최근 출간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에서도 확인된다. 한일 역사학자들의 탈민족적 역사쓰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국사는 국가권력의 정당화에 이용돼 왔다는 점, 블레이리즘의 영국 사례에서 드러나듯 완성된 근대국가에서도 국가권력에 의한 ‘재국민화’가 활발하다는 점 등을 통해 국사에서 벗어난다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일국적 차원에서 ‘국사’를 해체하는 게 아니라 개별 민족국가-동아시아-유럽세계로 이어지는 국사의 대연쇄를 드러내서 해체하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역사의 민주화가 이뤄지고, ‘국사’ 패러다임이 근거하고 있는 유럽중심 세계사에 대한 ‘동경’도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편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해체한 다음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국가를 단위로 한 역사쓰기 말고 다른 식의 역사의 필요성과 방법론, 그것의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사유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국사와 민족과 국가의 해체를 주장하는 책들은 좋게 보면 멀리 내다보는 작업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이런 ‘해체’의 담론들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오히려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국사해체’ 담론이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분석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담론이 아니라, 이른바 전세계적 저항담론의 진지에서 생산돼 쓰이고 있는 일종의 ‘보편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눈 또한 그 시야가 획일적일 수 있고, 좁을 수 있으며, 한국의 변화하는 특수성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군대에서의 비인간적 체험을 겪은 권혁범 교수, 학창시절 ‘국민교육헌장’ 암송경험이 있는 탁석산 씨 등 이들이 민족이나 국가와 관련해 간직하고 있는 상징들은 이미 빛 바랜 것들이고, 이런 개인적 체험이 민족국가 해체를 주장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민족(국가)로부터의 탈주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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