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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계의 넷플릭스 가능할까?
고등교육계의 넷플릭스 가능할까?
  • 김정규
  • 승인 2020.10.13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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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의 책으로 보는 세상

교육서비스도 넷플릭스처럼
자유의 책임의 문화로
순간들은 결국 연결된다

 

1845년부터 7년간 유럽 전역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다. 아일랜드의 피해가 유독 참혹했다. 기아와 질병으로 1백만 명이 죽고 조국을 등진 이들도 1백만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25%가 줄어든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영국인 지주의 수탈이고, 또 하나는 당시 주식이었던 감자였다. 단일품종으로만 재배되던 감자가 잎마름병에 감염되면서 식량난이 닥친 것이다. 단일품종 채택의 위험성, 다시 말해서 다양성의 필요성을 깨우쳐준 사건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콕족의 OTT 이용시간이 증가하면서 국내에서도 넷플릭스가 강자로 떠올랐다. 우편으로 DVD 대여업을 하던 넷플릭스가 어떻게 20년 만에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190개 국가에 1억 5천만 명의 회원과 연매출 200억 달러를 달성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거대회사로 발돋움했을까? 


그것은 “절차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능률보다 혁신을 강조하며, 통제를 최대한 자제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문화전문가 에린 마이어 인시아드대 교수가 함께 쓴 『규칙 없음』(이경남 옮김, RHK, 2020)을 보자.  

 

 

 

다양성이 좌우하는 생존의 원칙

 

넷플릭스는 미디어산업의 생태계가 격변하던 시기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세 가지 요소에 주목했다. 고밀도 인재풀, 솔직한 피드백 문화, 휴가나 지출 규정 같은 통제의 제거다. 그런데 이게 한국인 정서에는 좀 섬뜩한 면이 있다. 너무 비정하다. 


첫째, 인재 밀도 극대화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서로 능률을 높인다. 신속하고 혁신적인 조직은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가지고 있는 비범한 동료들로 구성된다.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팀 매니저가 전권을 갖고 팀을 꾸리도록 한다.


둘째, 임금님에게 벌거벗었다고 말하라. 실질적이고 솔직한 피드백을 할 수 있는 문화다. 상하를 가리지 말고 매사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다. 예의를 갖추고 우회적으로 심기를 안 건드리면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셋째, 규정도 없고 확인도 하지 않는다. 복장 규정도 없지만, 벗고 출근하는 사람도 없다. 규정과 통제는 능률은 올릴 수 있지만, 창의력은 떨어뜨린다. 스스로 내린 판단을 실행에 옮길 때 절차 없이 자유를 갖게 되면 직원들은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게 되고, 상황에 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혁신은 다양성과 그 연결에서 나온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가진 비범한 직원들이 ‘자유’와 ‘책임’의 기업문화 속에서 일하도록 하면서, 어떤 점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직원들에게 질문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리드 헤이스팅스는 강조한다. 세상의 점들을 연결하는 방식에 따라 현실을 보는 방법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도달하는 결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앞선 사람들과 다르게 점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순간,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넷플릭스는 그것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도 인생의 모든 순간들(dots)이 지나고 보면 어떤 식으로든지 다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현재의 순간들 역시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영국 버진 그룹 창업자인 리처드 브랜슨의 만트라(주문)도 ‘A-B-C-D(Always Be Connecting the Dots, 항상 점을 이을 것)’였다고 한다.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점’을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 측면에서 접근해 보자. 스콧 E. 페이지 미시간대 교수는 어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 창의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올 2월 고려대가 「고려대학교 다양성 보고서 2019」를 내면서 “다양성 기반의 교육과 연구를 강화하여 대학을 창의와 혁신의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는 2016년에 총장 직속으로 다양성 위원회를 발족시켜 2017년부터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고, 카이스트(2017)도 다양성 보고서를 출간했다. 혁신을 위해 구성원들을 새롭게 연결해야 할 점들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고등교육 환경이 전 세계적으로 급변하고 있다. 비대면 교육이 전면화․글로벌화되면 대학의 교육 서비스는 넷플릭스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이제부터 얼마나 신속하게 창의적으로 다양한 ‘점’들을 연결하느냐와, 이 연결을 쉽게 하는 문화를 조성하느냐가 대학의 미래를 가름할 것이다. 과연 우리의 역량으로 고등교육계의 넷플릭스를 출현시킬 수 있을까?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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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 2020-10-13 10:55:42
생물학적 다양성을 넘어 문화와 학문의 다양성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중요한 필수가치라고 할까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