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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리뷰_'시민과 세계'와 '아세아 연구'
출판 리뷰_'시민과 세계'와 '아세아 연구'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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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 © yes24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내는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아세아연구’가 최근호에서 주목할만한 특집을 준비했다. ‘시민과 세계’는 ‘시민정치, 국민, 그리고 세계시민’이라는 제목과 ‘세계화시대 시민국가와 다중적 시민정치를 위하여’라는 문제의식 아래 총 9편의 논문을 수록했고, ‘아세아연구’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 문제를 사회의 빈곤화와 정책의 한계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4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세계시민은 실존적 존재다

‘시민과세계’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주체인 ‘세계시민(민중)’이 이제는 실존적 존재임을 규명하며 포문을 연다. 의제는 명확하다. “국민국가나 민족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서 다중적?중첩적인 세계시민주의로 나가자”는 것.

철학자 김상봉 씨는 이를 ‘서로주체성’이란 말로 소화해낸다. 요컨대 이질적인 ‘민족’의 틀을 인정하고, 이 토양에서 가꿔온 민족적 주체성을 서로서로 인정하고 학습하자는 의미다. 이를 철학적인 사유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주체란 반성적 자기의식 속에서 자기와 동일성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차이성 속에 있다”라며, 민족간의 이질성이 결국 ‘나’, ‘우리 민족’의 주체성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배우는 가운데 서로주체성의 외연을 확장하면 이는 결국 참된 자아의 주체성 강화를 가져온다”라는 논리다. 이처럼 민족이 결코 간단히 지양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은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나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여기서 “미국의 패권주의나 유럽공동체에 맞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주장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라는 정용욱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는 요즘의 탈민족, 탈국사 담론이 또 다른 강국의 패권주의 논리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에 대한 논거로 역사상 한국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주장됐던 경우들을 짚어내며 그것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궁극적인 논의는 ‘국가’와 ‘국민’의 당위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국민이 세계시민으로서 얼마나 튼실한 실천력을 지니는가’로 이어진다. 이정옥 교수는 “중심부 국가들의 노동자들은 개인주의와 현실 타협의 길을 걷고 있고, 주변부 국가들의 지배 엘리트들은 부패의 길을 걷고 있다”라며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접근해 주변부국가들의 노동자민중을 위해 ‘국가’는 여전히 필요함을 역설한다. 홍윤기 교수도 “세계시민주의만큼 국민적 시민정치도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양자가 처음부터 균형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라기보다는, 세계시민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튼튼한 공공영역과 풀뿌리 지역자치로 우선 ‘공화국 속의 작은 공화국들’에 자양분을 줘야 한다”라는 논리다. 결국 시민정치의 사고는 ‘지역→국가/민족→지구세계’로 겹겹이 중첩된 경계선을 관통하는 입체적인 것이라는 점. 여기서 개개 시민인 ‘나’는 국가내 존재이지만, 국민국가의 기만에서 오는 부정성들과 싸워야 할 존재임을 역설한다.

‘아세아연구’는 한국이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난 3년의 시점에서 ‘사회적 빈곤화’는 더욱 극심해지는 것 아닌가를 화두로 삼았다. 즉 ‘민주화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를 점검하는데, 비판의 초점은 제도나 정책비판보다는 한국민주주의의 문제로 확대?심화된다. 핵심적인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시민생활 일반에 어떻게 뿌리내려야 하는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기업구조의 민주화와 복지

총론 격인 ‘한국복지와 민주주의’에서 고세훈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정책은 신자유주의와 타협한 것으로, “한국 복지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킨 최초의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팎의 복지를 담보해줄 의미 있는 정치경제 체제의 구상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고 교수는 제대로 된 복지제도를 위해서는 세 차원의 민주화-국가, 시민, 기업-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자계급의 ‘실질적인 정체세력화’로 사회복지제도의 역사적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노동의 조직·동원의 정치적 의의는 막중하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민주화’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한국의 시민사회가 냉전반공이나 지역주의 같은 이념지형에 갇혀 노동을 폄하할수록 사회적 약자의 이해가 정치적으로 대표될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현 기업구조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나 불안전 고용자 등 시장 내부자의 복지수준이 낮아지고 국가부담만 늘어난다고 지적하며 기업구조의 민주화도 강조한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산업경제학과)는 ‘연금 개혁과 연금자본주의의 위험’에서 노동시장에 편입된 내부자 중심의 복지제도를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현행 연금제도가 수혜계층의 폭은 넓혔을지는 모르나 노동시장의 변화는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현재의 연금제도는 성장과 재생산의 도구일 뿐이며, 오히려 금융유동성에 취약한 노동자들이 임금소득의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의 지위를 더욱 약화시키는 제도라는 지적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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