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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균분과 차등이 정의…우리 법 안의 정의를 찾아서
정당한 균분과 차등이 정의…우리 법 안의 정의를 찾아서
  • 김도균
  • 승인 2020.10.13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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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책_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김도균 지음 | 아카넷 | 324쪽

현실의 문제에서 모두들 각자 나름대로 정의에 의거하고 또 자신의 입장에 맞는 정의관을 채택하여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는 ‘정의의 상충’ 현상 때문에 정의의 적은 불의가 아니라 ‘또 다른 정의’라는 냉소와 회의주의가 득세한다. 정의에 관한 심층적 의견불일치 현상이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한 듯하다. 이는 존 롤즈의 제2 대저인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해결하고자 한 난제이기도 할 것이다. 


동서고금 인류가 소망해온 정의 이념에 대한 공리(公理)들과 근본원리들이 무엇인지, 각각의 정의론이 각자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정의의 목표와 실질적 정의원칙들이 무엇인지, 이 정의의 공통 기반을 두고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해석들 중 어떤 것이 정의의 목표와 공리들과 근본원리들에 합치해서 설득력이 있는지를 우리 각자가 판단할 수 있게 기본 개념들과 원칙들을 설명하고 안내해 줄 일종의 ‘정의의 지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왔다. 

 

 

 

복합적 평등과 정의

 

이명박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정의와 공정이 강조되었다. 절차적 공정성에 초점을 맞추어 절차적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크다. 필자는 절차적 공정성이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는 하나 절차적 공정성이 지향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절차적 공정성을 강조하는 절차적 공정성 담론에는 노력과 성취에 대한 보상이 핵심인 능력주의가 핵심이고, 응분 원칙이 그 핵심 정의 원칙인 듯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의 원칙으로 응분 원칙 외에 필요의 원칙, 자유 교환의 원칙, 균분 원칙도 있고, 각 원칙이 적용되는 자원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마이클 왈쩌가 제시한 ‘복합적 평등론’을 활용하고자 했다. 단순 평등이 아니라, 각각의 정의 원칙이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통용되면서도 종합적으로 보면 정의가 실현되는 상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복합적 평등이 실현된 사회는 각 영역에서는 차등/불평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상쇄되어 시민으로서의 평등한 지위를 누리는 사회라는 게 왈쩌의 아이디어다. 


한 정의 원칙이 모든 영역을 지배하여 독점적인 최고 정의 원리로 등극하는 사회, 가령 소련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공산당 권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위주의(독재) 정권에서는 정치권력 등이 다른 영역으로 월경하여 모든 사회적 유리함을 독차지 하는 사회는 부정의하다는 왈쩌의 견해를 수용해서 “정의 = 정당한 균분 + 정당한 차등(불평등)”으로 정식화해보았다. 그리고 이 발상을 다른 정의론들과 결합해서 좀 더 설득력 있게 전개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관계 평등의 이상과 기회균등의 원리

 

공정성을 풍부하게 해석하는 편이 근대 사회 이후 정의의 핵심 이상인 사회적 관계의 평등을 실현하는 데 더 적합하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보았다. 사회적 관계의 평등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존중 받지 못하고 열등한 인간으로, 이등 국민으로 멸시 당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위계질서와 관념에 반대하는 평등이다. 그래서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의 초점도 이런 이상에 비추어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간의 공정한 경쟁 결과를 존중하되 그럴 역량을 갖출 기회를 보장하는 데 맞춰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헌법과 법과 판례 속 정의와 공정

 

서구의 정의론들을 공부하면서 든 생각은 서구 정의 이론가들이 일단 자신의 사회를 염두에 두고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용기를 내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가 당대의 문제에 직면하여 힘들게 공동으로 지키고 일구어온 공적 정치 문화에 주목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아무래도 법학자인지라 우리 헌법과 법률,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판례에 담긴 정의원칙들과 그 근저에 놓인 정의관을 발굴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연히 우리의 헌법과 법률과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법원의 판례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 잘못된 점은 비판하되 계승할 점은 수용해서 발전시켜 공적 정의 담론의 공통 기반을 재구성해보자는 시도였지만 과연 성공했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선행하는 국내 연구 성과들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다. 능력 부족으로 미처 담지 못한 통찰력들은 앞으로의 연구에서 수용하여 발전시킬 생각이다.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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