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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코로나가 불러온 집과 가족의 소소한 공생
[정재형의 씨네로그] 코로나가 불러온 집과 가족의 소소한 공생
  • 정재형
  • 승인 2020.10.13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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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둘러싸인 인간의 삶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

일본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9)는 소우주를 보여준다. 그건 집과 인간이다. 영화는 일본식 집과 인간을 소우주를 나타내는 오브제로 사용한다. 일상은 표면적으로 조용한 환경(정)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인간의 드라마(동)를 그려낸다. 정중동의 철학이다. 영화는 가족의 모습을 재구성해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집에 둘러싸인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거기서 감독은 화목함이라는 주제를 끌어낸다. 가족이란, 소소한 문제들이 있어도 하나라는 주제다. 다시 정중동으로 설명하면 변하지 않는 것 가운데 소소하게 변하는 것들이란 의미일 것이다. 고정된 화면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나타내고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환경은 우주고, 움직임은 인생이다. 인생은 우주의 광대함에 비하면 작은 먼지 조각이라는 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5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대가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정적인 흐름과 수평, 수직선을 강조한 구도,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게 하는 스타일. 그뿐 아니라 가정과 결혼을 소재로 우주의 질서를 주제로 했던 오즈와 마찬가지로 히로카즈 감독도 가정과 가족을 중심 주제로 내세운다.  

식사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대화를 하지만 뭔가 어긋나고 긴장과 갈등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잘 드러낸다. 장면이 바뀌면서 둘의 갈등이 분명해짐을 느끼게 한다. 가족들이 모여 노래를 하는 장면은 가족의 화목을 불러내는 장면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할머니가 있고 좌측 앞에는 할아버지와 손자, 우측에는 아들 부부가 앉아 있다. 할머니는 노래를 부른다. 부모, 아버지와 아들, 죽은 아들에 관한 상처, 애 딸린 재혼한 며느리 등의 상처를 녹여낸다. 정중동의 의미를 통해 주제를 설명한다. 

화면의 구도는 인간들이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인간은 공간에 둘러싸여 있다. 가족의 모습은 감독에 있어서 중요한 모티프다. 같은 공간이면서 다른 사람이 거주한다. 변하지 않는 자연과 변하는 인간의 삶을 대조한다. 성묘를 다녀오면서 가족들은 항상 그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할아버지는 산보를 갔다 오면서 공원의 계단을 올라간다. 이 곳은 할아버지가 죽은 이후 아들이 올라간다. 

아들이 아버지의 전화받는 방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목소리만 들린다. 아버지의 부재다. 아버지는 노쇠해 옆집 할머니 치료를 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력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어 아버지의 죽음과 인생의 변화를 영화는 담는다. 구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이어받는 자연의 순환논리다. 아들 부부와 애가 농담을 하는 장면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마루에 있는 식물의 모습이 옆에 있다. 그 사이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간접적 방식의 설명이다. 

손자가 방에서 혼자 독백을 한다. 그는 죽은 친아버지의 영혼에게 다짐을 하는 말을 들려주고 다른 공간이 제시된다. 그 다른 공간은 할아버지의 공간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원하는 의사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하며 카메라는 할아버지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가 그 공간에 흡인됨을 의미한다. 엄마와 딸이 부엌에서 나누는 대사가 현관에 깔린다. 아버지가 산보에서 돌아오는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속에서는 같은 장소가 내내 반복된다. 변하지 않는 환경과 변하는 인간의 삶을 시각적으로 깨닫게 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평소 오래 있지 않던 집에 오래 머물며 새삼 집과 인간의 공존 의미에 대해 사유한다. 이 작은 영화 한편이 그 의미를 더욱 새롭게 한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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