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0:15 (목)
문화비평_개들의 정치
문화비평_개들의 정치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4.04.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컹컹!" 조악한 풍경의 變泰여!

▲정치꾼들과 이권정치화한 매체들의 주된 문법은 '컹컹'의 동어반복이며, 이 점에서 이들의 형태는 개들과 다름없다! ©
‘풍경이 기원을 은폐한다’는 하이데거-고진(柄谷行人) 류의 명제가 오롯하게 짚히는 곳은 역시 정치판일 것이다. 民福厚生의 재능과 무관한 권력욕들이 개미처럼 꾸역꾸역 그곳으로 몰려드는 이유도 결국 이 ‘풍경’의 위세와 이익 때문이다. 정치는 무엇보다 풍경이며, 그 풍경이 만드는 超實在의 자가증폭현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일차적인 소임이 가장 그럴싸한 ‘풍경’을 재생산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그 풍경의 기원에 대한 충격과 환멸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풍경을 먹고 사는 자일수록 기원을 단속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니, 정치인들의 다수가 결국 은폐를 존재의 방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요컨대, 代議를 민심의 現前으로 특권화하려는 상식은 종종 그 민심의 역사를 깡그리 망실케하는 오류로 드러난다. 대의라는 장치의 풍경을 어떤 진실의 현전으로 보려는 순간, 그 풍경을 얻기 위해 흘린 고통과 상처의 과거는 오히려 그 풍경의 현재를 위해 은폐되거나 捨象되고 마는 것이다. 매끄러운 TV 속에 등장하는 매끄러운 정치인들의 풍경, 즉 대의를 알리바이로 삼은 그들의 매끄러운 풍경은 오늘에 이르는 지난한 투쟁과 고통의 이면사를 송두리째 생략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이미지-권세일 뿐이다. 친일과 독재와 부패의 역사가 잊혀지고서야 가능한 현실이 우리의 땅이며, 이제 우리가 목도하는 개들의 정치는 그 망각에 의해서 좀스럽게 가능해진 풍경인 것이다.

풍경은 망각에 의해서 재생산된다. 가령, 아우슈비츠를 만든 독일이 이른바 ‘기억의 정치(die Politik der Erinnerung)'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처럼 실질적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의 파행은 친일이라는 기원, 독재라는 기원, 부패라는 기원을 망각함으로써 쉼 없이 재생산되는 이미지의 연쇄구조다. 발본의 개혁이 아니라 풍경의 外裝으로 제시되는 반성과 결심, 다짐과 결의, 모토와 슬로건을 믿지 말아야 한다. 근대의 모든 체계적 권력은 한결같이 그 체계를 온존시키는 자기비판과 고백의 알리바이에 정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력은 적당한 자기비판을 再體系化시킴으로써 근본적 비판을 희석하거나 무력화하는 ‘은폐의 존재론’을 체질화한 집단이다.
이른바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란 결국 곧 무대 위의 풍경이 아니라 그 아래와 그 뒤를 살피라는 권면으로, 경험적-계보학적-역사적 시야의 중요성을 집약한 메타포다. 지식과 종교와 예술조차 정치사회적 매트릭스 속에서 요동치는 터, 이 점에 관한 한 정치적 결정이란 따! 로 말할 일도 못된다. 바르트(R. Barthe)나 부르디외의 지론처럼 ‘신화는 그 대상에서 역사를 뺏는 장치'라면, 우리 시대의 역사를 뺏는 가장 탁월한 무대는 정치판이요, 그 장치는 이권정치화한 여러 매체들이다. 상업적 대중주의에 의탁해서 조형된 이들의 권위주의적 위세는 그 구린내 짙은 기원을 굳게 밟고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풍경인 것이다.

이들 정치꾼들과 그 매체들의 주된 문법은 동어반복---“컹컹!”---의 조악한 변주와 이데올로기적 分法 “컹/컹!”인데,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의 행태는 개들과 다름없다. 이들은 감당키 어려운 삶의 복잡한 현실들을 깡그리 彼我로 양분시키고, 수십마디의 강직증적 어휘만을 서슴없이, 끝없이 복제해내고 있다. 기껏 진화한 모습이라는 것이 양비론 정도이지만, 선언과 비난을 남발하고 설명을 거부하는 이들 세계의 위계적 형이상학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친일과 독재와 부패의 기원들이 하얗게 세탁된 채 정치의 풍경 속으로 쉼없이 재투자되는 루트를 막고, 그 인맥의 네트워크를 끊어버리고, 그 체계를 전복시키는 길은 역시 지속적이며 철저한 재역사화에 있다. 에라스무스와 비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니체와 푸코, 湛軒과 燕巖 등이 한 목소리로 들려준 바, ‘현실의 풍경은 역사의 딸’이니, 역사와 기원을 잊는 자 그 딸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김영민 / 한일장신대 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