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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론_'시선의 정치'에 대한 박계리씨의 서평을 읽고
서평 반론_'시선의 정치'에 대한 박계리씨의 서평을 읽고
  • 강성원 계원조형예대
  • 승인 2004.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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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이해가 식민주의적 시각이라니

▲ © 리브로
교수신문 제307호(2004.4.5)'본격서평'에서 박계리 씨가 강성원 교수의 '시선의 정치'에 대해 '미술사적 오류', '개성/공공성 범주 설정의 문제', 특히 '동양과 서양에 대한 이분법적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저자의 시선 등을 비판한 데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시선의 정치’에 대한 서평을 읽으면서 일반 독자들도 본인의 글에 대해 박계리 씨와 유사한 독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평만 앍지 않고 이 책을 직접 읽어 본 독자라면 박계리 씨와 많은 부분에서 생각을 같이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하지만 혼란의 근본 원인 제공은 무엇 보다 내 글 자체일 수 있다는 책임감도 느껴, 반론 형식으로나마 글에서 사용된 몇 개념들에 대해 보충 설명하고자 한다.

'공공성'은 가치척도로서의 개념

첫째, 문인화가 주로 지식층의 미술이었다는 사실은 맞다. 본인의 관점은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인화가 지식인들의 생활이념과 공적 이상을 표상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서평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순수, 감상미술로서 문인화를 바라보는 기존의 미술사적 관점을 다시 음미해보자. 문인화를 감상했던 사람들이 문인화에서 감상했던 건 당시 지식인들의 (생활)이상이다. 그 이념의 추체험이다. 그림의 내용이 비록 탈속세적이었을망정 이들의 그림은 전통사회의 생활가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지식인들의 시각문화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논리, 혹은 문인화와 민화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시각문화로 구별하는 논리도 기왕의 미술사적 논리다. 필자의 시선에 볼 때 문인화는 전통 사회의 보편적 생활가치를 담고 있고, 시각문법의 기본 틀도 비교적 일정했다. 비록 각각의 그림들이 드러내는 사의의 깊은 뜻을 무지랭이 인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지라도, 그 미적 가치가 당시의 공적 생활가치를 재현하고 있다고 믿은 점은 지배층에서건 그렇지 않건 간에 대중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있었다고 보인다.

둘째, 서평에서는 본인이 ‘개성/공공성’이라는 개념대립으로 공공성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대성이 읽히지 않는다고 보는데, 본인은 이런 뜻으로 공공성 개념을 사용하진 않았다. 공공성 개념은 개성에 대립되는 사회성의 요구에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혹은 또 따로 별개의 것으로도 요구하고, 혹은 이미 내재돼 있을 수도 있는 가치개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공공성 개념은 ‘요구되는 바 가치척도로서의 개념’이다. 그래서 본인은 공공성/공중성 개념을 구분해, 공중성을 기존 사회의 이념으로, 공공성을 이념 혹은 이상, 진리의 개념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문인화는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공공이념을 반영하는 것으로 기능했지만, 지금의 시선에서 볼 때 전통사회를 표상하는 시각적, 대중적 공중성을 반영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박계리씨가 이 책을 “공공성이라는 추상적 존재의 당위만이 반복되는” 글로 보는 점은 그럴 수 있다고 보인다.)

본인이 제시한 공공성의 (올바른)개념은 ‘모든 특수한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강제 없이 합의할 수 있는 올바른 공통의지로서의 가치이념’이다. 이러한 것으로서의 공공성의 구체적 내용은 특수한 사안들의 구체성에 비춰서만 추구되고 밝혀질 수 있다. 공공성 개념은 그러므로 특정한 시대성과 계급의식 등을 그 구체성에 상응해 가늠, 비판 할 수 있는 가치척도가 된다.

동양의 전통에 주목한 이유

셋째, 서양과 다른 동양의 모습을 긍정하는 본인의 시선이 서양의 눈으로 동양을 바라보는 식민주의적 시각과 맞닿아 있고, 이런 시선은 현재의 동양을 철저히 부정하는 시선으로 서평은 읽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서양과 다른 동양의 모습을 꼭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동양을 제대로 보기 위해 동양의 전통을 다시 보고자 했음을 밝혀두고 싶다. 그랬을 때 본인이 늘 개인적으로 다시금 깨닫게 됐던 건 ‘전통문화가 자연과 삶에 대한 생활상의 경험에 뿌리내리고 있는 문화’라는 생각이다. 본인에게 전통문화는 자연과 삶의 경험, 그 이치로부터 생활가치를 규명해온 문화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서구화된 현실문화의 모순과 피폐상을 비춰 볼 수 있는 혹은 어떤 것이 옳은 삶인가하는 데에 대한 역사적 방향감각을 줄 만한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가치전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올바른 민족 문화사는 이러한 것으로 기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궁극 의도는 전통해석의 문제에서건 공공성의 문제에서건 우리가 지키고 나가야할 올바른 가치이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이념은 생활상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요구들을 밝히고 인식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인식들에 상응하는 보다 올바른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타당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넷째, 서평은 미술이 의미화 정치라는 인식은 “이미지를 정치에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현재의 미술가들은 대중매체시대 이미지 정치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미술 그 자체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도 종식시킬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컨데 인간 인식 자체로 볼 때도 이미지는 생래적으로 의미화 정치에서 태어난다.

미술에 한정해 봐도 미술은 한 시대의 의미화 정치를 위한 시각제도 속에서 발전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미술은 작가 개인이 추구하는 어떤 의미, 관념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게 그 말이다. 의미화정치란 다시 말해 관념의 표현이고, 관념의 표현이란, 그 관념가치의 표현, 곧 의미화, 가치화 정치이다. 본인은 무엇보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올바른 가치 즉 공공성은 올바른 생활의 요구와 함께하는 것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현대생활에서 볼 때 사회의 가치표현은 주로 대중 시각이미지로 전달되므로, 그럴수록 미술가들은 올바른 가치이념 잣대들로 이런 이미지들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미술의 존재가치가 더욱더 요구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강성원 / 계원조형예대 미학

필자는 서울대학교 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미학전공)를 수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서울건축학교, 경원대, 세종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 <한국 여성미학의 사회사> <문화변동과 미술비평의 대응> 등이, 옮긴 책으로 <상품미학과 문화이론>(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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