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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삶은 길고 지루한 살아남기
[정재형의 씨네로그] 삶은 길고 지루한 살아남기
  • 교수신문
  • 승인 2020.10.0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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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영화 '카운터페이터'
죽음은 신비한 현상 아니고
삶도 숭고하지 않고 괴로워

‘위폐범’이란 뜻의 영화 「카운터페이터 The Counterfeiters」(2008, 스테판 루조비츠키, 오스트리아)의 소재는 과거 유태인 박해를 그린 것이다. 소재가 되는 역사적 사건은 ‘베른하르트 작전’이다. 이 작전은 이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행해졌던 작전으로서, 한 마디로 연합국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경제를 교란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고 수행했던 황당한 사건이다. 이 작전을 실제 수행했던 자는 독일군 장교 베른하르트 크뤼거중령이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작전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유태인들을 동원해 위폐를 제작했다. 인쇄공, 금융전문가, 위조지폐범, 화가, 디자이너 등 전문가출신 유태인 143명이 동원되었는데, 최종 4명만 살아남았다.

영화의 구조는 현재-과거-현재를 오가면서 주인공 소로비치가 죽음의 문턱에서 어떻게 생존해가는가를 기록하듯이 묘사하고 있다. 몬테 카를로-독일-몬테 카를로, 카지노-수용소-카지노로 이동하면서 영화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대는 1936년, 무대는 독일 베를린. 유태계 독일인 소로비치는 희대의 위조지폐범이다. 그는 술집에서 만난 한 여인과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를 가지려는 순간, 게슈타포가 들이닥치고 검거된다. 소로비치는 마르테하우스 수용소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그는 독일 장교의 눈에 들어 용맹한 독일군의 모습을 그려주면서,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작센하우스 수용소로 이감된다. 

그곳의 수용소장은 베를린에서 자신을 검거했던 게슈타포 대장 헤어조크. 그는 여러 곳에서 이감되어 온 유태인 죄수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작전명령을 하달한다. 그들은 영국인 지폐를 위조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이른바 베른하르트 작전이다. 지휘 및 최종 검수 등 책임은 바로 위폐범의 전설 소로비치가 맡는다. 

영화 속 많은 죽음의 이미지를 놓칠 수 없다. 첫 번째 만나는 죽음은 일상적 죽음. 죽음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밥 먹듯이 쉽게 일어난다. 그 모습이 너무 태연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고귀한 인간이 저렇게 쉽게 죽어도 되나? 이런 의문이 시종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인간은 그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간다.  

두 번째. 허망한 죽음. 폐병에 걸린 죄수를 살리기 위해 소로비치는 정말 백방을 뛰어 다닌다. 그가 노력하는 대부분은 죄수의 약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병든 죄수를 구하려는 절정의 순간, 죄수는 너무도 허무하게 제거되어 버린다. 허망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인간이 어떤 목적을 향해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문득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러한 죽음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더 이상 살아갈 힘조차 빼버리는 죽음의 이미지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죽음. 조금만 기다렸으면 해방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마지막에 자살하는 죄수를 본다. 그 죽음을 바라보는 동료들은 안타까운 죽음에 발을 동동 구른다. 자살은 때론 숭고하기도 하겠지만, 이럴 때의 자살은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죽음을 보다 보면, 삶은 머리로 생각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지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게 타당하다 느껴진다. 

이 영화는 죄의식과 생존의식을 실감하게 한다. 죽음은 더 이상 신비한 현상이 아니다. 그건 일상이다. 영화는 그렇게 죽음을 묘사한다. 삶이란 역시 숭고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 죄책감으로 인하여 더욱 괴롭고, 지옥이다. 모두 다 죽는데, 살아남은 자들의 심정은 어떠한가. 슬픔과 비굴함이 그들을 괴롭힌다. 이 영화는 평소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극한적 상황 속 인간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한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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