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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과 함께 읽는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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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인
  • 승인 2020.09.25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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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뒤 계속되는 도전, 우리나라 영문학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저자 전상범 | 한국문화사 | 364쪽

전공이 영어영문학이라고 하면 으레 Shakespeare 몇 편은 읽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영어영문학과가 있는 상위 52개 대학에서 Shakespeare를 필수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는 대학은 4개 대학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통계가 아니라 미국의 통계이다. 짐작건대 우리나라 어느 대학에서도 Shakespeare가 필수과목으로 설정된 곳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Shakespeare 한 편 읽지 않고도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Milton이나 Chaucer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대학원 중심대학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적이 있다. 쉽게 말해 본격적인 전공 공부는 대학원에서 하고, 대학에서는 그 준비를 위한 폭넓은 기초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첫째, 전체적인 이수 학점 수가 줄었고, 둘째, 전공보다 교양과목이나 부전공을 장려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셋째, 필수과목을 줄인 결과 예전보다 전공필수과목의 이수 학점이 현저히 줄게 되었다. 

필수과목이 줄어든 결과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운 Shakespeare나 영시 같은 과목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는 과목은 역시 말하고 듣기와 관련된 과목들이다. 예전에 필자가 학과장 일을 맡고 있던 어떤 해에 「영국희곡」 과목에 비전공 수강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 그 이유를 알아본 적이 있다. 영어회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과의 교수 일동이 적이 놀랐던 일이 있다. 

그런데 대학원 중심대학의 문제점은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선택된 일부 학생들만이 대학원에 간다는 사실이다. 학부가 최종 학벌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위한 기초 교양만 쌓다가 학교를 떠나게 된다. Shakespeare라고 하면 영국 사람들이 인도하고도 바꾸지 않을 작가라든가, 또는 언어 구사의 마술사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번역본이나 하물며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가 수없이 사용하는 pun만 해도 그렇다. Hamlet이 Polonius를 죽이고 그 시체를 끌고 가면서 죽고 나니 이제 Polonius가 grave해졌다고 말할 때 그것은 죽어서 말수가 적어졌다(somber)는 뜻인 동시에 시체가 무겁다(weighty)는 뜻도 되고, 동시에 이제 갈 곳은 무덤(grave)이라는 뜻도 깔려 있다. 수도 없이 사용되는 이와 같은 pun의 재미를 번역본이나 영화, 연극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본서와 같은 저술이 독창적일 수는 없다.

 선행 연구들의 성과들을 필자 나름대로 취사선택하였으며, 주로 Clark & Mason (2015) , Cummings(2017), Deighton (1896), Ichikawa, S. & T. Mine (1992), Imanishi, M.(1987), Kim, Jae-nam (1967), Miola (2014), Mowat & Werstine (2013), Oba, K. (2004) 등의 주석본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밖에 金在枏 교수님의 번역을 비롯한 국내 학자들의 번역과 일본의 福田恒存(후쿠다 쯔네아리) 교수를 비롯한 몇몇 분들의 번역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단어의 뜻풀이는 A. Schmidt의 Shakespeare Lexicon과 C.T. Onions의 A Shakespeare Glossary의 풀이를 우선하여 사용하였으며, 그밖에 COD(Concise Oxford Dictionary)나 SOD (Shorter Oxford Dictionary)도 함께 사용하였다. 오래전 필자는 여름 한 학기를 Oxford 대학에서 보낸 적이 있다. 여름의 Oxford 대학은 문자 그대로 문학 장마당이다. 

매 일과 같이 문학 강연이나 시 낭송회가 있고, 또 거의 매 일과 같이 Shakespeare의 연극 공연이 있다. 대개 대학생들의 아마추어 공연이다. 입장료 같은 것은 없고, 대신 비번의 배우들이 분장한 채 공연 도중에 관중석을 돌며 초콜릿을 팔았다. 손에 피를 묻힌 험상궂은 분장의 Macbeth가 와서 초콜릿 상자를 내밀면 누구나 한두 개는 팔아주게 된다. 그러던 Macbeth가 자기 차례가 되면 초콜릿 상자를 다른 배우에게 맡기고 급하게 무대에 뛰어올라 연기를 계속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릇 영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Shakespeare 한 편쯤은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는 필자의 평소 신념이 이런 모양의 책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 영문학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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