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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입이 다 즐거운 국화
눈, 코, 입이 다 즐거운 국화
  • 손철주
  • 승인 2020.09.18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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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의 미술놀이 ‘외화내빈(外華內彬)’ 6]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몬드리안이 ‘신조형주의’라는 나름 신상(新商)을 들고 미술시장을 노크한 때가 1920년 무렵이다. 시장은 찬바람이 돌았고 고객은 그의 추상화를 백안시했다. 앞서 10년 넘게 그려온 꽃 그림은 더러 찾는 이가 있었다. 순수조형을 론칭하려던 몬드리안으로선 자존심이 상할 판이다. 그가 돈벌이로 끄적인 게 꽃 그림이라면 어지간한 아이러니다. 물론 자기 입으론 꽃이 호구지책이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릴리스와 백합, 붓꽃, 장미 등을 그려놓고 그는 귀에 쏙 들어오게 내뱉는다. “꽃이 겉만 아름다운가. 그 너머에 숨은 아름다움을 나는 믿는다.” 얄팍한 변명이 아니라 추상화가다운 변설이다.

몬드리안, 꽃을 그리면서도 추상으로 

몬드리안은 국화꽃도 자주 그렸다. 유화로 그리고, 수채화로 그리고, 연필 소묘로도 그렸다. 그가 그린 국화는 꽃잎이 소담해서 클로즈업한 구도와 딱 어울린다. 무리 지은 꽃들은 되도록 피하고 단독이나 더블 캐스팅한 꽃송이를 주로 그렸다. 형태의 디테일에 가려진 순수의 속심을 탐색하는 시도였으리라. 꽃을 그리면서도 추상으로 나아가고자 싹수머리를 굴린 셈이다. 그의 국화 그림에서 과연 ‘그 너머’가 발견되는가.

피터르 몬드리안, ‘국화’, 1908~1909년, 종이에 콩테, 25.4×28.6㎝,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이름의 ‘a’자 두 개가 다 들어간 사인이다.
피터르 몬드리안, ‘국화’, 1908~1909년, 종이에 콩테, 25.4×28.6㎝,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이름의 ‘a’자 두 개가 다 들어간 사인이다.

세상이 놀랄 득의작을 꿈꾸던 몬드리안이 미리 밝힌 약속이 있다. 그런 그림이 나오면 서명할 때 ‘몬드리안(Mondriaan)’이란 성(姓)에서 ‘a’ 자 하나를 빼겠다고 말이다. 추상화로 넘어가는 고빗사위인 1908년 작 ‘붉은 나무’가 그 사례다. 이 문제작은 서른 중반의 몬드리안을 암스테르담의 새벽별로 추어올린 노둣돌이 됐다. 꽃 그림에도 서명은 했다. 대개 이름의 두음자인 ‘P M’ 아니면 ‘a’ 자가 둘이다. 이건 그냥 재미 삼아 해보는 얘기다. 품평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다. 몬드리안의 국화 그림은 어쨌거나 손맛이 스며들었고 보기에 홀가분하다.
동양의 국화 그림도 눈에 쉬 들기는 마찬가지다. 하여도 숨긴 뜻이 가든하거나 섣부르지 않다. 꽃 모양새보다 꽃 너머의 우의를 끄집어내려고 안달을 부리기는 우리 옛 화가들이 훨씬 극성스럽다. 국화꽃은 어여쁘고 향기가 사랑홉다. 매화나 난초, 대나무보다 별스런 덕목이 있으니,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꽃을 피운다. 가을을 맞이하되 서리가 그 색을 지울 수 없고 금풍(金風)이 그 잎을 지게 할 수 없다. 국화꽃은 말라비틀어져도 가지를 오달지게 지킨다. 여북하면 남송의 화가 정사초가 읊었을까.

‘차라리 향기를 안고 가지 끝에서 죽을지언정(寧可枝頭抱香死) 

어찌 북풍에 휩쓸려 꽃잎을 떨구겠는가(何曾吹落北風中).’

 

국화라면, 시인 도연명을 빼놓을 수 없다

국화라면 이 사람을 빼놓고 얘기 못 한다. 동진의 시인 도연명이다. 베옷 입고 비바람도 못 가릴 집에 살던 그는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심었다. 술 마시다 흥취가 일면 국화를 따 들고 무연히 남산을 바라보는데, 이 부동의 포즈가 중국 문학사를 과점한 그의 캐시카우가 돼버렸다. 방에는 줄 끊어진 거문고 하나. 소리 없이도 음악을 즐긴 도연명의 국화 사랑은 더욱 자자했다. 국화를 예찬하는 뒷날의 노래는 도연명의 뒷북이라 해도 괜찮다. 국화는 그에게 은둔하는 품성을 길러주었고 흐린 세상을 건너는 방편이 되었다.

정선, ‘동리채국’, 1926년, 종이에 수묵담채, 22.7×5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시아에서 국화는 도연명의 아바타다.
정선, ‘동리채국’,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2.7×5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시아에서 국화는 도연명의 아바타다.

겸재 정선이 부채에 그린 ‘동리채국(東籬採菊)’을 보자. 제목 없이도 이 그림이 도연명의 일상을 그린 줄 안다. 도연명은 무릎 앞에 술잔이 엎어져도 아랑곳없이 남산에 눈길을 돌린다. 사립문에 졸망졸망 심은 국화가 샛노랗다. 한 잔 술에 국화 한 잎, 두 잔 술에 국화 두 잎, 꽃으로 셈 놓으며 마셨다. 저 느긋함이 시비에 귀 막고 사는 자의 뱀뱀이일진대, 국화는 무서리를 이기는 꼿꼿함을 앞세우지 않고 먼 마음을 데리고 사는 선비의 단짝으로 넉넉했다.

국화는 쓰임새가 많다. 옛 문헌을 봤더니 미심쩍은 용도가 나왔다. 국화꽃을 찧은 가루가 술고래를 치료하는 양약이란다. 도연명은 노상 국화주를 마셨다. 그가 쓰린 속을 다시 국화 분말로 달랬을까. 말아라, 바라만 봐도 아까운 국화다. 

국화에 부친 옛적 시도 한가득하다. 유미(幽美)한 이미지만 칭송한 게 아니다. 웃음이 슬며시 번지는 제시(題詩)도 눈에 띈다. 중국 청말민초 미술사의 앞머리를 장식한 화가가 치바이스다. 국화를 그리고 나서 적은 그의 시가 알짬이다.

‘서풍 불어 가장 맑고 그윽한 게 무엇일까(西風何物最淸幽) 

국화 무리 향내 날 때가 늦가을이지(叢菊香時正暮秋)  

꽃도 사람 닮았는지 세태를 아는가 봐(花亦如人知世態) 

허리 꺾고 머리 숙이는 짓을 배웠네(折腰無分學低頭)’

 

치바이스는 열 송이 넘는 국화들을 죄다 고개 숙인 모습으로 그렸다. 도열한 신하들이 읍하는 광경이 연상된다. 다소곳하게 자란 국화를 예절 바른 사람처럼 묘사한 화가의 속내가 상냥하다. 저 정사초의 서릿발 같은 시에 비하면 한결 푸근한 성정 아닌가. 같은 국화를 바라보는 화가의 깜냥이 제가끔 다르다.

국화를 소재로 한 그림 중에 가장 얄궂은 장면을 그린 조선 화가는 누굴까. 뭐, 누구긴 누구겠는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단아 혜원 신윤복이다. 그가 그린 ‘국화 속에서’는 숫제 19금이다. 웃통 벗은 사내가 대님을 매는데, 구겨진 상투 아래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길게 땋은 머리에 댕기 늘어뜨린 소녀는 고개를 갸울인다. 가운데 할멈이 사내에게 술 한 잔을 건네면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수군거린다. 뭐 하는 짓이기에 이리 요망한가. 정황으로 어리짐작이 된다. 젊은 서방이 어린 기생의 초야권을 샀다. 치러질 일은 이미 치러진 꼬락서니다. 얍삽한 서방의 입가에 밉상스런 흡족함이 배였다. 저 음충스런 할멈이 뚜쟁이 노릇을 했다. 낫살이나 든 그녀가 입에 발린 말로 어린 것을 달래는 모양이 더 자발스럽다.

신윤복, ‘국화 속에서’, 18세기, 종이에 담채, 28.2×35.6㎝,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이 음란한 판에 국화는 왜 끼어들었을까.
신윤복, ‘국화 속에서’, 18세기, 종이에 담채, 28.2×35.6㎝,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이 음란한 판에 국화는 왜 끼어들었을까.

남우세스러워서 말 이어가기가 저어되지만, 국화 더미 애처로이 둘러싼 꽃 담장 안에서 이 무슨 방자한 거래인가.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작동하지 않던 조선의 색줏집 풍속이 뻔뻔스럽게 그려졌다. 혜원의 낯 뜨거운 붓질이야 다 안다고 치자. 그림에 옮겨 적은 시구도 웬걸 수상하다. 다른 도발을 도모하려는 낌새가 짙은 필치다. 원시는 당나라 원진이 지었다. 우선 풀이해보자.

‘국화꽃 둘러싼 집은 도연명이 사는가(秋叢繞舍似陶家)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차츰 기우네(遍繞籬邊日漸斜)  

꽃 중에 국화를 유독 좋아해서가 아니라(不是花中偏愛菊) 

이 꽃이 지고 나면 다른 꽃이 없다네(此花開盡更無花).’

원시의 뜻은 숨기고 말 것도 없이 진솔하다. 하지만 마지막 두 구절은 혜원이 연출한 상황극과 맞물려 어느덧 육담(肉談)으로 돌변한다. 저 서방의 갈급한 색정을 떠올리게끔 꾸며댄 혜원의 플롯은 악동의 한 수다. 혜원이 한 가닥 소견머리는 남았던 걸까. 미성년의 초상권을 고려해서 옆모습이다.

 

문봉선, ‘국화’, 2004년, 종이에 수묵담채, 75×36㎝, 개인 소장. 국화도 붓을 잘 만나야 맵시가 난다.
문봉선, ‘국화’, 2004년, 종이에 수묵담채, 75×36㎝, 개인 소장.
국화도 붓을 잘 만나야 맵시가 난다.

문봉선, 저 치명적인 라인을 보라

이제 현대 화가의 국화도를 본다. ‘수묵의 심장을 움켜쥔 화가’로 알려진 문봉선은 순한 먹과 옅은 색으로 국화 한 그루를 단숨에 그린다. 옛 화가와 완연히 다른 감각이 화면에 펄떡거린다. 저 치명적인 라인을 보라. 허리를 살짝 비틀며 올라가는 줄기가 ‘교태’로 보이는가. 천만에, 이게 국화의 ‘생태’다. 자연에서 국화의 본색이 무릇 그러한데, 눈에 콩깍지 낀 사람이 그걸 작위적 시늉이라고 우겨댄다. 꽃잎은 가선을 긋지 않고 화심에서 붉은색이 번져나가도록 묘사했는데, 자칫 흘미죽죽하기 쉬운 꽃잎이 붓끝에서 새뜻하게 살아났다. 잎 주변에 먹이 튄 느낌까지 더해 야생미가 되우 멋지다.

국화는 어떻게 그려야 마땅할까. 가슴속에서 국화가 먼저 그려져야 운치가 살아난다고 옛 화가들은 입이 쓰도록 되뇐다. 꽃은 높고 낮은 것이 있되 번잡하지 말아야 하고, 잎은 상하좌우가 서로 가려지게 배치하되 난잡하면 못쓴다. 가지가 뒤얽혀 있어도 어지럽지 않아야 하고, 뿌리는 겹칠지언정 늘어서면 버린다. 꽃과 꽃술은 덜 핀 것과 활짝 핀 것을 갖추되 만개한 것은 가지가 무거우므로 누워 있고, 미개한 것은 가지가 가벼우니 끝이 올라가야 제맛에 겹다.

이게 다 운치 표현에 성심을 다하는 전통의 까탈스러운 기법이다. 떨기마다 바람서리 사무친 국화여, 부디 시절 붓을 만나 올가을 심란(心亂)이나 어루만져주기를.

 

손철주 미술평론가

국민일보 기자, 학고재 주간 등을 지냈다. 교양미술서 베스트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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