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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가는 역사, 만들어 가는 박물관
만들어 가는 역사, 만들어 가는 박물관
  • 교수신문
  • 승인 2020.09.22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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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라는 단어 사용으로
어두운 역사 마주보게 해

시민들, 자료 자발적 기증
1만 여명 박물관 건립 동참

식민지 역사 문제 해결 위해
일본 사람과 함께 노력해야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박찬희

2018년 서울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를 다룬 박물관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만 전문적으로 다룬 박물관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름이 수상쩍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식민지라는 단어를 박물관 이름에 사용했다. 식민지는 일제강점기와 어감이 꽤 달라 막상 들으면 거부감이 들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지배와 피지배라는 일제강점기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식민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어둡고 가슴 아픈 역사이기 때문에 덮어두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거나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으로 넘겨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식민 지배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전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물관 개관일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관일은 8월 15일이 아니라 8월 29일이다. 108년 전 이날,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임종국 선생이다. 그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기 근 3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임종국 선생은 친일파를 파헤치는 작업으로 평생을 보냈다. 1965년 한일협정을 계기로 친일 문학을 조사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성과는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에 모아졌다. 이 책에는 그의 스승 유진오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의 아버지 임문호까지 이름이 올라갔다. 그는 철저하게 자료에 입각해 친일 행적을 밝혀나갔고 만여 장의 인물 카드에 그 내용을 기록했다. 당시는 과거의 치부를 드러내는 친일파 연구보다 영웅적인 독립운동가 연구에 집중될 때였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그만큼 힘들었고 소중했다.

1989년 그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의 뜻을 잇는 민족문제연구소(출범 당시는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전 3권)을 발간했고, 그 후 시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열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대면하는 용기
  
박물관 소장 자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임종국 선생이 쓴 친일인명카드다. 친일파 연구와 친일인명사전의 바탕이 된 카드로 모두 1만 3천여 장이다. 이 카드의 일부는 박물관 전시실 <고백과 성찰을 위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코너에 전시됐다.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이완용과 송병준의 카드를 전시실 가장 앞에서 만난다. 한쪽에는 친일파 4,776명이 수록된 친일인명사전이 보인다. 이 코너의 설명글에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로 정확히 기록하고 용기 있게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소장 자료와 유물은 7만여 점이며 도서는 5만여 권이다. 그런데 이 자료와 도서들은 다른 박물관에 비해 독특하게 모아졌다.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이 많다는 점이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에서 기증했다. 기증품 가운데에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후 유족의 뜻에 따라 기증된 것도 있다. 기증자들은 한 사람의 역사와 체취가 오롯이 담긴 자료와 유물들이 깊이 연구되고 식민지 역사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증했을 것이다.

이 자료와 유물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상설전시실은 <일제는 왜 한반도를 침략했을까>, <일제의 침략전쟁,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 시대의 다른 삶-친일과 항일>, <과거를 이겨내는 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로 구성됐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자료와 유물들은 그 당시의 역사뿐만 아니라 박물관으로 오기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발기인 명단. 시민 1만여명이 건립 운동에 동참했다. ⓒ박찬희

시민들의 후원으로 박물관 건립
 
박물관 건립에 든 비용은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때처럼 시민들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시민 1만여 명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 운동에 동참했다. 박물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수많은 이름들을 만난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발기인 명판으로 박물관 건립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다. 커다란 명판을 빼곡하게 채운 이름들은 박물관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건립 운동에 참여한 당사자들에게는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고 관람객들에게는 이곳이 수많은 사람들의 성원으로 만들어졌다는 건립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비용을 외부 기관, 특히 국가로부터 받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국가로부터 비용을 받게 되면 박물관이 제 목소리를 내는데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식민지 시기 식민 지배의 실상과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와 풀어나갈 방법을 고민했다. 때문에 독립 영웅들이나 가슴 뿌듯한 독립 운동의 역사 대신 가슴 아프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고 부끄럽지만 직시해야하는 역사를 과감하게 전시했다.  

이러한 특성을 잘 드러낸 코너가 <한시대의 다른 삶-친일과 항일>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친일파를 다뤘다. 그들의 친일 행적을 그들이 남긴 기록을 근거로 제시했다. 근현대사 박물관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성찰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코너가 바로 이곳으로, 전시를 보면서 시대적 상황과 책임, 역사 청산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와 직면한다.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제대로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당시 일본이 벌인 침략 전쟁을 번영을 위한 전쟁으로,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주장하며 과거를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사람과 함께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살펴보고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은 의미가 깊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자 2015년 일본에서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박물관을 건립하려는 뜻을 일본에 널리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모임에서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 취지를 알리는 팸플릿을 배포하고 건립 기금을 모으고 자료를 수집했다.

<공감과 연대의 힘> 전시 코너. ⓒ박찬희

일본의 반성 자료도 전시
 
이곳에서는 다른 박물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전시 코너가 있다. <공감과 연대의 힘>이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는 일본어 자료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었다.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시민단체에서 보내온 자료들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료와 더불어 일본인들의 발언을 만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인은 지배 국민이며 조선인은 피지배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인 개개인은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희생자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가해국의 국민이다. 이것은 중대한 차이다. 그 차이가 일본의 민중이 단순히 군국주의의 희생자가 아니게 한다.”
여러 글 가운데 특히 조선사 연구자였던 하타다 다카시의 글이 발걸음을 잡는다. 그의 글은 모두가 과거 역사의 피해자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 일침을 놓는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완결된 박물관이 아니다. 박물관이 제시한 주제들은 새롭게 연구되며 자료들은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이곳은 마음 편한 곳이 아니다. 식민지의 현실을 대면하고 직시하고 성찰하고 현재를 고민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을 나설 때쯤 상설전시실의 마지막 대주제인 <과거를 이겨내는 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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