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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현기영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지면으로의 초대] 현기영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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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7 09:37:15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의 시대는 문학과 함께 행복한 시대였다. 너나없이 문학청년이던 그 시절, 전쟁과 보릿고개와 억압된 근대화의 험한 여정을 구비구비 넘어가던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때로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문학.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그 위기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이는 바로 작가들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시대를 다시 불러올 이 또한 작가이다. 이 시대, 작가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의 대표적 작가 모임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새 이사장을 맡게된 소설가 현기영 씨는, ‘세월을 견디는 문학작품’이 필요한 때가 다시 오리라는 믿음이 지금의 문학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조직이나 단체에 얽매이는 것은 작가의 절대적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해 대표직을 고사했지만, ‘어쩌지 못해’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맡게 된 지금, 전국 12개 지회를 아우르고 있는 작가회의 대표로서 그에게는 할 일이 많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은 서울/지방의 이분법과 일맥상통한다. 문학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어서, 각 지역이 갖고 있는 활발한 문학의 열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 중 하나이다. 그는 무엇보다 지방 문단의 소외 아닌 소외를 극복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 갖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언론개혁 문제이다. 말글을 뼈대 삼는다는 것에서 태생을 같이하고, 세월의 영욕을 같이 해온 신문과 문학이 등을 맞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는 “문학인들이 신문에 우정어린 충고를 해줄 자격이 있는지, 또 우정어린 충고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박정희 기념관 설립 논쟁 역시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회의하게 만드는 해프닝 중의 하나입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 등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한 문제도 작가회의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는 사안입니다.” 마침, 그를 만난 날은 그가 4·3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에 다녀온 뒤였다. 소설가 현기영을 제주와 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현재의 그를 낳고, 키우고, 소설 앞에 세운 것은 바로 한국 현대사의 유례없는 비극이 펼쳐진 곳, 제주였다.

“숱한 비극, 哀史로/쇠뭉치같이 단단히 뭉쳐졌으므로/더욱 비극적으로 아름다운/척박한 그대의 땅/제주가 낳고 키워낸 한 사내”제주 사내 현기영을 평생 두고 지켜봐 온 양정자 시인의 詩 구절이다. 시인의 매운 눈에 아내의 그윽한 눈이 더해져서일까. 소설가 현기영을 향해 이보다 더 정확하고 애정 어린 표현은 없을 듯하다. 작가에게 있어 자신을 키워내고 담금질해준 공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제주는 그에게 축복뿐 아니라 불행이고, 증언해야 할 역사였다.

“작가는 지옥을 좋아합니다. 평화로워 나른한 천당보다 불길타는 지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요.”지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를 태워내는 작가들도 있다지만, 소설가 현기영이 발 담근 지옥은 개인적 체험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모두의 지옥, 그것이었다.

“78년에 순이삼촌을 펴내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데, 마치 박정희와 일대일로 맞붙어 싸우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무 것도 아닌 소설 한 권인데, 박정희가 나를 잡아다 고문하는 것은 진실이 무섭기 때문이다, 이래서 문학이 위대한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깨달음은 고문당한 상처 위에 인두질한 듯 새겨졌고, 그는 평생 ‘문학과 운동’을 함께 해왔다. 빨갱이라는 낙인 아래 숨죽이고 있던 숱한 순이삼촌들의 원혼을 문학이라는 살풀이를 통해 달래주었고, 지속적으로 4·3 진상규명 운동을 벌여나갔다. 그렇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일까. 그 동안‘불법적’으로 치러왔던 4·3 기념제를 올해는 제주의 각 행정단체의 후원아래 합법적으로 치러냈다. 어쩌면 그 눈물겨운‘투쟁’의 이력이 소설가 현기영을 자꾸 역사의 전면으로 떠미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저 문학의 힘을 믿고, 문학인들이 가야할 길을 바라보고, 사회에 울려야 할 문학인들의 목소리를 생각할 뿐이다. 소설가로서, 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 그의 어깨와 마음이 함께 무겁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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