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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54]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곤충 노래기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54]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곤충 노래기
  • 권오길
  • 승인 2020.09.14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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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기
-고약한 노린내를 풍기지만 토양 기름지게 해
-음습한 곳에 서식하고 딱딱한 겉껍질로 싸여 있어
노래기
노래기

인천(仁川)을 시작으로 각지의 정수장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오더니만 부산의 한 외곽마을엔 독특한 체취를 풍기는 노래기가 떼로 나타났고, 서울 은평구 봉산 일대에선 대벌레가 숲을 뒤덮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겨울 전국 평균기온은 1973년 이후 가장 높았고, 겨울철 기온이 높았던 해는 언제나 곤충으로 인한 피해가 컸었다. 겨울 온도가 높으면 겨울 동안 벌레 알이나 유충들이 얼어 죽지 않고 죄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이러한 곤충의 역습이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하였다. 서양인들은 자연을 개척했다면 조상들은 무위자연(無爲自然), 그저 자연과 더불어 순종하면서 조화롭게 살았다. 그래서 다친 제비 다리를 꽁꽁 매줬고,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지네를 마냥 흘겨보기만 했으며, 장맛비 오는 눅눅한 여름 방바닥에 기어드는 노래기도 언제나 타일러 내보냈다.

음력 이월 초하룻날에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향랑각시속거천리(香娘閣氏速去千里)’를 한지에 써서 입춘대길 붙이듯 노래기가 꾀기 쉬운 서까래나 기둥, 벽, 문지방에 비스듬히 붙였지. “곱고 고운 향기 나는 아가씨(香娘閣氏)여 어서 빨리 천리 밖으로 가소서(速去千里)!”

악귀나 잡신을 쫓고 재액(災厄)을 물리치기 위해 야릇한 글자를 쓴 부적(符籍)과 다름없다. 징그러운 노래기도 이렇게 달래고 타이른다. 향기로운 여자라는 의미에서 향랑(香娘), 얌전한 여자를 상징하는 각시(閣氏)로 의인화하여 나쁜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려 하였으니, 쥐를 서생원(鼠生員)이라 불러 구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래기는 절지동물 노래기강 다지류(多肢類)이며, 대표적인 노래기는 황주까막노래기(Orthomorphella pekuensis)로 몸은 19마디이다. 체절 하나에 두 짝(쌍)의 짧은 발(다리)이 빽빽하게 붙었으니 배각류(倍脚類)라 부른다. 그리고 몸길이는 2.0∼2.8cm로 원통형이고, 번들번들 광택을 내며, 체색도 검은 것에서 적갈색 등이다. 

노래기를 한자로는 발이 백 개라고 백족충(百足蟲), 둥근 고리가 있는 벌레라고 환충(環蟲)이라 한다. 또 영어로는‘millipedes’라 하는데 여기서‘milli’는 일천, ‘pedes’는 발이란 뜻으로‘천개의 발’이란 의미다.

벌레들도 장마에는 빗물이 지겨워 물기가 적은 곳을 찾아든다. 이렇게 비나 오는 날이면 방에 군불을 넣으니 이것들도 물기 적은 방으로 슬그머니 기어든다. 노래기가 방에서 기는 것을 모르고 그만 맨발로 밟았다. 미끄덩대서 넘어질 뻔했고, 언짢은 느낌이 들면서 악취가 확 풍긴다. 

노래기는 고약한 노린내를 풍기기에 노래기라 부른다. 노래기는 자극을 받으면 몸 벽에 있는 현미경적인 미세구멍으로 독성물질인 시안화수소(HCN)를 분비한다. 다행히 이 가스가 사람에게는 크게 해롭지 않으나 다른 동물에게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한다.

낙엽이나 지푸라기 따위가 썩은 부식질(腐植質)을 먹고 살며, 지렁이처럼 생태계의 분해자로서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그러나 놀놀한 어린 곡식 새싹들을 뜯어먹는 수가 있으니 이럴 때는 해충(pest)이다. 이들은 9∼10월에 교미, 산란하고 죽으며, 알에서 부화한 유생은 그 상태로 겨울나기(越冬)한다.

그들은 주로 음습한 곳에서 살며, 특히 볏짚이나 가랑잎이 모여 썩어 가는 곳에 많다. 노래기는 몸 일부를 제외하고는 딱딱한 겉껍질(외골격)로 싸여 있다. 노래기를 건드리면 몸을 또르르 말아 딱딱한 외골격(外骨格,exoskeleton)으로 몸을 둘러 감싸버린다. 위험하다 싶으면 고슴도치(hedgehog)나 아르마딜로(armadillo)가 몸을 둥그렇게 말아 온통 바늘과 비늘로 몸을 싸버리듯이 말이지.

속담 “노래기 회도 먹겠다.”란 고약한 노린내 나는 노래기의 회를 먹는다는 뜻으로, 염치도 체면도 없이 행동함을 핀잔하는 말이다. 또“비위가 노래기(장지네) 회쳐먹겠다.”란 아주 비위(脾胃)가 좋음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 비위란 지라(비장,脾臟)와 위(胃)를 묶어 부른 말이다. 또한 “노래기 족통만 하다.”란 노래기의 발이 가늘고 아주 작은 데서, 살림이 빈곤하여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어떤 물건 아주 작을 때에도 쓴다.

이들 속담이 풍기는 말맛(어감)은 노래기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과 다리(발)가 아주 작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래기 속담이 여럿 있다는 것은 그 동물이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권오길(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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