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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제에 대해 각 사상가들은 복잡하고 다중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들은 혁명적 페미니스트라고도 평가될 만한 플라톤의 한 전통과 남성 쇼비니스트의 별명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전통 양쪽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혹독한 비판을 받은 사람들은 헤겔, 맑스, 루소, 롤스, 하버마스로, 이들은 여성문제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해 거의 무지했거나 둔감했다. 그들의 사상이 아무리 혁명적이고 비판적일지라도 여성문제에 관한 한, 반여성주의적이고 반시대적인 셈이다.
반면에 홉스, 로크, 밀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이들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시대를 앞서서 주목하고 비판했다. 물론 이들의 비판의 칼날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 가치관에 침윤된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무뎌지고 말았지만, 그 시대에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빼놓을 없는 주요한 페미니스트들인 울스턴크래프트, 보봐르, 아렌트는 명예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성적 남성, 감성적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도식을 수용했다는 면에서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반면에 푸코는 비록 페미니스트는 아닐지라도 미세한 차이의 정치학을 선도적으로 마련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페미니즘의 다양한 시각들과 차이의 정치학을 견지함으로써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도덕적 결벽성과 이론적 배타성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이러한 다양한 시각이 무방비적인 상대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이론도 여성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페미니즘적 당파성을 강하게 함축한다. 그러나 고전 남성 사상가들의 반여성주의적인 태도만큼은 신랄하게 비판해야 하는데, 이들을 대화의 장에 끌어 들여 활발한 토론을 벌이게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이론의 비일관성에 대한 변명의 기회를 너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들 저서 내의 행간을 과잉 해석함으로써, 이들의 반여성주의적 색채가 자칫 희석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칫 게토화 되고 여성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는 페미니즘 이론의 배타성을 남성 사상가들에게 적극 개방해 페미니즘 문제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편자가 밝혔듯이, 페미니즘은 남녀간의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를 포괄하면서 다양한 여성 시민권을 보장할 수 있는 평등의 이론이 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차이를 놓치고 다소 배타적인 연대만을 고집했었던 한국 여성 운동계와 한국 사회 전반에 바람직한 열린 태도를 갖게 할 것이다.
연효숙 / 연세대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