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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뛰어난 예술가의 조건
가장 뛰어난 예술가의 조건
  • 김현희 진주교대
  • 승인 2004.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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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예술의 역사』| 이재희 외 지음| 경성대 출판부 刊| 2004| 542쪽

인간의 삶의 흔적이요, 인간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으로 인해 역사상 많은 사상가들의 주목을 받아온 ‘예술’에 대해 이 책은 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해 예술 활동에 관련한 사람들의 역사를 다룬다. 즉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수요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활동과 그들 사이의 경제적 관계를 밝힘으로써 예술을 이해하고자 한다.

전근대와 근대 이후를 구분해 예술생산자는 공동작업을 하는 다수에서 예술가 개인으로 바뀌어 갔고, 예술수요자는 왕이나 귀족 계급에서 중간계급으로 바뀌어 갔다. 1부 ‘전근대 예술’과 2부 ‘근대 예술’을 다루면서 저자는 예술생산자 및 수요자 측면에서 당대의 경제구조,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등이 예술에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한 예술의 변화를 수많은 자료와 풍부한 예증을 통해 보여준다.

예술의 심미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예술작품의 내적 성질과 예술가, 예술수용자의 관계는 항상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며 역동적인 역사적 관계를 이끌어냈다. 그렇기에 예술에 대한 多학문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경제적 접근 방법 역시 예술작품의 심미적 가치라 불리는 예술의 내재적 성질에까지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3부에서 다루는 9장 ‘예술 속의 사랑’과 10장 ‘예술 속의 노동’은 인간 삶의 근원적 토대인 사랑이나 노동 같은 주제가 경제적 구조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시대마다 예술 속에서 어떻게 표현돼 왔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 책의 백미다.

하지만 10장에서는 노동자와 농민의 시각에서 ‘노동’이라는 주제를 다뤄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반면, 9장에서 ‘사랑’을 다루는 것은 여성 중심의 주체적 시각이라기보다는 중립적인 시각일 뿐이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혹은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 예술의 필요조건이라면 10장에서 노동자 농민을 주체로 삼은 것처럼 9장에서도 좀 더 여성 주체적인 시각과 여성예술가의 작품에 의한 예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대예술을 다루며 대중예술을 현대 사회와 경제구조의 산물로 포착해 현대예술의 주류로 놓고 순수예술과의 관계에 주목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20세기 초 순수예술의 모더니즘적 전통이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예술을 경시했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는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다른 한편 통속적 오락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가'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잠시 유보돼야 할 것 같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위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도 필요하겠지만, 자본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저항하며 미래를 향해 박차고 나아가는, 계속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예술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현희 / 진주교대·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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