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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美를 논하다_4: 일상성의 미학
우리시대 美를 논하다_4: 일상성의 미학
  • 이영준 계원조형예대
  • 승인 2004.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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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속에서 非日常을 발견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사진은 근본적으로 일상적이지 않다. 사진은 일상적으로 많이 찍히지만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찍히는 그 순간은 매우 특수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대로, 같은 순간을 두 번 사진 찍을 순 없다. 좀 깊이 있게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보면 한 장의 사진이 찍힌다는 건 우연과 필연이 대단한 인연 속에서 교차해 일어나는, 아주 특수한 하나의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인연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이건 나의 실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나는 내 저서 ‘이미지비평’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이 돌아다녔는데, 처음에 찍은 사진의 상태가 좋지 않아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대에 가서 또 찍은 적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방안에 있다가 문을 활짝 열고 쨍하고 신선한 공기를 맡은 듯한 최초의 발견의 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진 찍는다는 경험은 일상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단지, 사진의 상투화된 면이 ‘사진의 일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예컨대 결혼식이나 졸업식 같은 이벤트에서 의례히 찍게 되는 사진들. 사진의 일상이란 사진을 찍을 때 지키는 코드들, 즉 결혼사진은 우아하게, 돐사진은 귀엽게, 애인사진은 섹시하게 만들어주는 규칙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일상의 규칙이 깨지면 당혹스러워 하듯, 사진의 일상의 코드가 깨지면 당혹스러워 한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했을 땐 항상 벌어지는 것, 인식의 범위 안에 있는 것, 반복되는 것을 말하게 되는데, 사실 이는 사진 개념과 동떨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풍크툼이란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를 요약하면 사진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표상할 수 없는 난해하고 막막한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풍크툼은 모든 사진에 있다. 그것은 미처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은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주민등록증 사진 같이 뻔한 사진에도 풍크툼은 있다.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면 나중에는 자기 얼굴로 보이지 않고 다른 어떤 추상적인 사물로 보이는데, 이게 바로 풍크툼의 순간이다.

풍크툼은 어떤 뻔한 사물도 기이하고 낯설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진을 통한 ‘일상의 재발견’은 사실은 재발견이 아니라 최초의 발견이다. 그건 사진의 마술과 관련된다. 요즘의 탈근대화 된 예술에서 아도르노가 수수께끼 성격이라고 부른 마술적 가치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사진은 여전히 그걸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 마술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 보존할 것이다. 만 레이의 사진을 보면 시시한 사과 하나도 수수께끼 같은 사물로 둔갑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상의 발견이긴 하되 영 낯설고 기이한 발견인 것이다. 카메라 렌즈는 여전히 사람들을 속이고 홀리고 있으며, 일상성의 코드, 우연과 재발견에서 오는 풍크툼으로 당혹하게 하고 있다. 수도 없이 많은 사진들이 찍혀서 이제는 더 이상 찍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독특한 사진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진의 발견능력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독일의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쇼핑몰이나 축구장 등의 일상의 현장을 대형카메라로 구석구석 초점을 맞춰 치밀하게 찍었을 때, 사람들은 카메라의, 그리고 그 작가의 능력에 입을 벌리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쇼핑센터에 진열된 밤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상품의 모든 디테일, 색깔들이 지겨울 정도로 박혀 있으며, 그가 찍은 축구장의 선수들 유니폼 색깔은 잔디의 푸른색과 아찔한 시각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늘날 구르스키가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순식간에 너무 많은 추종자를 만들어 버려 신선함이 사라진 작가라는 사실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가 뻔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또 우리를 놀라게 할 깜짝쇼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덕분에 지루하고 맥없는 우리들의 일상은 카메라에 빼앗겨 짜릿하고 아찔한 남의 일상이 돼버리지만, 손안에 있는 황금병아리보다는 들에 뛰어노는 남의 병아리가 더 보기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구르스키에게 빼앗긴 일상은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이영준 / 계원예술조형대 이미지 비평

필자는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수학한 후 뉴욕주립대(빙햄턴)에서 "현대사진이론의 지형: 사진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진비평과 이미지 비평활동을 하며, 저서로는 ‘이미지 비평’, ‘사진, 이상한 예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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