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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이유
[정재형의 씨네로그]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20.09.0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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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사람의 이야기 ‘미 비포 유’
당신 앞에 나란 어떤 존재인지 일깨워
하루하루 눈뜨는 게 두려울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이 중요

“같이 떠나요. 우리 둘이서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소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필요 없는 일이다. 테아 샤록(Thea Sharrock) 감독이 만든 「미 비포 유 Me Before You」(2016)에 나오는 이 대사는 같이 있고 싶지만 먼저 떠난 사람의 이야기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주는 영화치곤 정말 세다. 

잘 나가던 남자 윌(샘 클라플린)은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만난 간병인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집안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처녀 가장이다. 6년 다니던 커피숍 직장에서 해고된 후, 돈만 아니면 절대 하지 않을 남자 돌보는 간병인을 하게 된다. 짜증내고 빈정거리는 냉소주의자 윌은 다소 수다스럽지만 그래도 희망을 선사하려는 헌신적인 루이자를 괴롭혀댄다. 

참다 못한 루이자는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잔 심정으로 윌에게 한 마디 한다. 이후 미안한 마음을 느낀 윌의 변화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친해진다. 결국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데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다. 루이자는 윌이 안락사를 몰래 계획하고 있던 걸 알게 된 것. 그 누구도 윌의 생각을 꺾을 수 없고 루이자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간다.  

제목은 여러 개로 해석된다. 당신보다 내가 먼저 갈게. 당신 만나기 전에 나는 달랐어. 당신 앞에 나란 어떤 존잰가. 영화 속에서 윌은 결국 안락사를 선택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사랑하는 부모와 루이자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윌은 루이자를 만나기 전 오만한 인간이었다. 금수저 집안, 부자 사업가, 미남, 만능 스포츠맨 어느 하나 모자랄 게 없는 남자였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절망 속에서 가난한 여자 루이자를 만나 겸손한 인간으로 변했다. 가진 게 없는 자가 가진 게 많은 자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걸 보고 자신의 삶을 반성한 것. 그는 전 재산을 그녀에게 남기고 죽는다. 변하기로는 루이자도 마찬가지. 윌을 만나기 전 루이자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만 알던 여자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돈보다 사랑이 더 소중함을 깨닫는다. 사랑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돈은 사랑 없이 공허한 소비일 뿐.  

나는 마지막 해석을 가장 중요시한다. 루이자는 윌에게, 윌은 루이자에게 어떤 존잰가. 서로를 바꾸는 존재. 서로에게 헌신하는 존재.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유일한 이유가 당신이야.” 윌이 루이자를 사랑하면서 처음 한 말이다. 우리도 이 말을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절망의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가를. 살다 보면 하루하루 눈뜨는 게 두려운 시절이 있다. 이 세상 빨리 뜨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루이자는 윌이 끝내 안락사를 선택하는 걸 보고 화를 내며 말한다. “당신은 이기주의자예요. 당신이 나를 생각한다면 절대 그래선 안돼요”. 둘은 서로가 없어선 안되는 존재였던 거다. 때론 사랑으로, 때론 증오로 나타난다. 그게 사랑이다. 

이런 말도 떠오른다. 강우석 감독의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1998)에는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려는 친구에게 절친한 친구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너 내 돈 못 갚으면 죽을 생각 하지마. 나쁜 XX야!” 우린 그 절친이 인색한 게 아니란 걸 다 안다. 먼저 가려는 그 친구가 그저 안쓰럽고 슬플 뿐이다. 그리곤 그는 박차고 나가 복도에서 기둥을 껴안고 혼자 끄억끄억 흐느꼈다. 친구여, 먼저 가지 말고, 힘들어도 일 다 마치고 우리 같이 가세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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