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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의 절필
한국문학사의 절필
  • 김종회 경희대
  • 승인 2004.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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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傑을 그리워 함

한국 소설 문학에 한 획을 그은 대하역사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 그는 1990년 소위 '절필선언'을 한 지 1년만에 다시 문단에 복귀했다. "내 스스로 애써 부인한들 예나 지금이나 작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원론적 명제를 안고 돌아왔다.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던 것은, 1971년 '휴면기' 이래 그가 발표한 단단한 단편 및 방대한 장편들이 표방하고 있는 바 한 작가의 탁발한 서사적 형상력이 행여 동시대 문학의 행간 속으로 주저앉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고심참담한 '절필' 1년은, 이 작가에게 준엄한 자기 반성과 새로운 기력을 섭생하고 충전하는 기간이 됐을 수도 있었고, 소설을 제작해 내는 필생의 작업에 있어 하나의 유의미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이름있는 작가로서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이나 지식인의 윤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절필선언' 자체는 하나의 웃지 못할 희극이 된 셈이었고, 좀더 거칠게 말해 그렇게 함부로 '절필선언' 따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촉발하는 사건으로 남게 됐다.

만약 춘원 이광수나 육당 최남선이 그 문필이 충분히 무르익은 채 일제에 영합하지 아니하고 붓을 꺾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근대 문학 또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를 가지고 있을 터. 유학의 正名主義에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던 이 민족의 선비정신은 모두 어디로 가고, 우리는 존경할만한 인물 만들기에 실패한 슬픈 역사의 후예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 주목할만한 한 인물이 있다. 김창걸. 일제 강점기에 만주 유이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소설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그 시대상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뜻 있게 문학화 한 작가다. 1939년 초 당시 관동군의 영향 아래에 있던 '만선일보' 신춘현상문예에 '학교를 세우고'라는 작품으로 당선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필봉을 낮추어 쓰라. 발표될 가능성 여부를 생각해서 쓰라'는 충고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1940년대 초반, 문제성이 희석되는 작품과 문제의식이 되살아나는 작품 사이를 오가다가, 일제 막바지인 1943년 창작 환경이 한층 가열한 상황으로 변하자 그는 '절필사'를 남기고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의 절필이 그 절필사에서 보듯 반드시 항일투쟁의 한 방식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비위'를 맞추는 문필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결심이 중요한 동기인 것은 분명하다.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일제하의 시기를 통틀어 이러한 작가의 결단을 직접적으로 천명한 경우가 없는 까닭으로, 김창걸은 재만 한국문학, 더 나아가 한국문학 전반에 있어서 존중받을 지위를 가질만하다.

근자의 대통령 탄핵사태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글과 말을 관찰해 보자면, 새삼 김주영이나 김창걸이 존경스러워진다. 강준만 같이 중간파의 자리가 없다고 탄식하면서 글을 닫겠다는 이도 없지 않으나 너나 없이 그 동안 수련한 글과 말을 들고 세속의 저자거리를 향해 몸을 던지는 형국이다.

하나의 중대한 사회적 사건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이 첨예하게 부딪칠 때, 지식인의 올곧은 태도는 대체로 '兩非論'일 수밖에 없다. 너는 이래서 문제가 있고 너 또한 이래서 문제가 있는데, 이 모두를 감안하더라도 특히 네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유발하지 않았느냐, 거기서 출발해서 이렇게 가면 그 문제들이 이렇게 풀릴 수 있지 않겠느냐….

이를테면 하나의 사태에 대한 엄정한 균형감각이 필요한 것인데, 이 탄핵정국의 지식인들은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이 무슨 부끄러운 유산이라도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양자 가운데 한 쪽으로 기울어 상대방의 허물만 증폭시켜 보이고, 다른 한 쪽의 허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넘어가는 자들이 무슨 지식인들이겠는가.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세속적 지식인들이여, 그대들의 태도가 저 여의도 공간의 정치꾼들과 다를 바 없다면 이제 그만 침묵하라. 아니, 이 세태의 난맥상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없다면 당분간이라도 절필하라. 그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윤리적 襟度가 되도록, 그나마 우리의 글과 말이 더 이상 부서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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