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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조정기능 키우고 연구개발 이전해야
기획조정기능 키우고 연구개발 이전해야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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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과기부 기능개편 논의점검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를 과학기술 조정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개편 방향이 밝혀졌지만, 이후의 논의에 대해서는 진척사항이 없어 또 다시 공수표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기부가 조정기관로 개편될 것이라는 것은 올초부터 예상된 사실이었다. 지난 1월 말에 오명 장관이 과기부가 과학기술예산의 실질적인 심의·조정권만 가지고, 타부처의 과학기술정책 조정과 인프라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업무 계획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과기부가 맡고 있는 응용연구개발 사업을 산자부와 정통부로 이관하자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그간 산자·정통·과기부 간의 과열된 업무 경쟁과 연구과제 중복투자는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었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과기부, 산자부, 보건복지부 3개 부처에서 유전체와 단백질 분야에만 26개 기관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과기부·산자부·정통부를 총괄하는 기술부총리제 신설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국가연구개발의 총괄적 관리를 위한 것이었다.

지난 4일에 열린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과학기술 혁신체제 개편'을 주제로 한 공청회에서도 과기부가 조정·심의 기관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 개편의 청사진이 드러났다.

예산 심의/조정권 소유.. 기획조정 기능 강화

이 자리에서 최석식 과학기술부 기획관리실장는 '과학기술부의 기능개편 방향'을 통해 개편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최 실장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조정의 실효성이 미흡하며, 연구개발·산업육성·인력양성 등 핵심 국가발전요소들을 긴밀하게 연계하고 종합·지원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이 없다"며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의 종합관리 업무, 과학기술인력 양성·활용업무, 연구개발사업 지원업무 등을 과기부가 종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 일환으로 과학기술부의 명칭 변경을 검토해야 하며, 기술발전 초기단계에 있으면서 다수 부처에 관련된 BT와 NT분야는 과기부가 기반구축 차원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과기부가 기획조정 부서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했지만, 업무내용의 이관 방향 및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문제는 기초과학 연구 및 기초과학인력 양성을 어느 부처로 이관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종범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과기부가 기초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놓을 경우 기초과학 육성 기능이 없어질 소지가 있어 앞으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입장이다. 반대로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는 "연구개발 예산권을 갖고 오면 기초과학과 원천 연구는 예산권으로 독려할 수 있다"라며 "과기부는 전체 R&D 예산 비중을 늘리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다른 부처에 기초과학 예산 집행을 과감히 이관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현재 과학기술계의 지지 여론에 힘입어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는 과기부 장관의 부총리 격상에 대해서도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노화준 서울대 교수(행정학)는 "과기부 장관의 계급만 높아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노 교수는 과기부의 역할과 시스템 정립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 과기부 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될 경우, 국가과학기술자문회 의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의장, 정보통신과학기술 보좌관 등과의 역할 중복도 지적됐다. 자리만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구체적 개편 논의 10월이나 돼아 가능할 것"

이처럼 과학기술혁신 체제 및 관련 부처 기능개편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어 갔지만, 과기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담당 사무관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대답하며, "대통령 탄핵, 총선 등이 남아있어서, 과기부 개편 논의는 10월이나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선 이후 국회의 성격에 따라 과학기술정책 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역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한 교수는 "제도 개혁에 따른 공청회를 아무리 열어도,  뚜껑을 열어보면 상황에 따른 개편이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체제 개편 논의만 분분하다가 사라졌다. 또 다시, 변화의 바람에 휩쓸려 가면서 그동안의 논의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지나 않을지, '과학기술중심 사회' 구축은 가능할는지, 학계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길 바랄 뿐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과기부 기능개편 논의  어떤 것이 있었나?

과기부를 비롯해 국가연구기관의 개편 논의는 새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과기처가 과기부로 승격된 것을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의 논의는 큰 성과 없이 사라졌다. 출연연 통폐합론이나, 산자부-정통부 통폐합 논의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 1996년 과기처 해체론
과기처 산하로 통폐합됐던 과학기술부문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재경원 정통부 해양수산부 등 각 관련부처로 되돌아가는 '회귀' 사태가 발생했다. 이 같은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종합조정 부재현상을 두고, 과기처를 해체하고 '부' 이상의 조직으로 키워 실질적인 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안이 제기됐다. 1998년에 과기처는 과기부로 개편됐다.
 
- 1998년 출연연 통폐합론 vs 확대개편론
국민의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과학기술연구사업의 효율성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출연연의 효율성 제고를 논의했다. 이에 출연연 통폐합론자들은 출연연이 20개로 지나치게 많고 연구·행정기능 중복이 심해 대폭적인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확대개편론자들은 연구기능의 전문화를 위해 출연연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과학기술부 산하 20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3∼6개의 그룹으로 묶어 이사회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1999년 과기부 통폐합론
기획예산위가 발표한 정부조직개편 시안은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를 통폐합해 '산업기술부' 신설, 기초과학인력 양성기능의 교육부 이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부조직의 효율적 축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는 반대 입장이 제기됐으며, 결과적으로 통합은 무산됐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국민회의-자민련의 신경전으로 보는 입장도 있었다.

-2003년 국책연구기관 통폐합론
정부 주도로 국책연구기관 통폐합을 포함한 체제 정비 검토를 논의했다. 국책연구기관의 경쟁력 강화가 이유였다. 그러나 관련 연구기관 연구원들은 연구소를 혼란에 빠트릴 뿐이라고 반발했다. 이사회 체제에 대한 개편안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2004년 총선 이후 과기부 장관의 부총리 승격 논의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총선 이후 정부 각 조직의 역할과 기능 조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산자부와 정통부의 통합문제에 대해서 "10명중 9명은 통합을 말하지만 통합보다는 일단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켜 (국가과학기술정책의) 통합과 조정 협력체계를 만드는 것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 2004년 출연연 이사회 개편안 제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발전협의회는 과학기술계 출연연 체제와 관련해 국무총리실 산하 과학기술분야 3개 연구회를 단일 연구회로 통합한 뒤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이관해야한다는 의견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게 제출했다. 국과위를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위한 총괄 종합 조정자로 하고, 과학기술부장관리 과기부총리로서 부위원장이 돼 출연연이 특정부처에 소속되지 않는 범부처기관으로 유연하게 운영돼야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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