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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발전은 혁신과 궤적을 같이 한다
음악의 발전은 혁신과 궤적을 같이 한다
  • 김형준
  • 승인 2020.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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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의 동서남북 뮤직톡

소리를 상징적 기호로 표기하는 악보는 문화 혁명
개인도 새로운 지식 흡수·융합과정을 통해 발전해야
새로운 세상 창출 위한 개인의 노력 절실히 요구돼

서양음악사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대표적인 것은 르네상스 이전의 고대음악, 중세음악, 르네상스 음악, 바로크 음악, 고전파 음악, 낭만파 및 국민주의 음악, 근현대 음악이다. 그러나 작곡가들이 시대를 걸쳐서 활동하고 서로 영향을 받아 발전해 왔으므로 시대를 뚜렷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바로크 시대 이후를 17세기 음악, 18세기 음악, 19세기 음악, 근현대 음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바로크 시대의 시작 시점을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탄생 년도로 하자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서 참고로 바하의 두 아들, 칼 필립 엠마뉴엘 바하 (별칭 CPE 바하 또는 함부르크 바하)와 요한 크리스찬 바하 (별칭 런던 바하)도 알려진 음악가였으므로 그냥 바하라고 부르면 혼동을 주게 된다. CPE 바하는 런던 바하보다 나이가 20세가량 많아 런던 바하가 어린 시절에 음악을 가르쳤다. 런던 바하는 볼프강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런던에 머물 때 많은 영향을 주었고 볼프강 모차르트와 그의 부친 레오폴드 모차르트 역시 그를 존중하였다.

서양음악의 발전과정은 혁신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악보의 발달을 보자. 중세 초기에는 노래 가사가 하나님 말씀을 찬양하는 것이므로 일체 토를 달 수 없었고 구전으로 듣고 외워서 불러야만 했다. 그러다가 가사 위에 꼬불꼬불한 기호, 네우마를 표시하여 성가대원들이 통일시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연구자에 의하면 네우마가 섬세한 표현까지도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4선지가 창안되었는데 당시에는 음의 높낮이가 단순하여 불편함이 없었다. 이후 음정이 복잡해지면서 5선지가 등장한다.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의 곡은 5선지에 표기되어 있다. 악보의 발전과 음악의 보급 확대는 독일의 인쇄술과 교육제도의 발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악은 소리예술이므로 소리를 상징적 기호로 표기한다는 것은 문자의 발명과 같은 거의 문화혁명에 가깝다. 음악의 발전은 시대에 따라 음악가들의 각고의 노력과 창의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기업 경영에서도 악보처럼 형식을 잘 갖춘 매뉴얼이 정비되어 구성원들이 통일된 마음으로 숙지하여 업무를 수행하면 빈틈이 없는 앞서가는 회사가 될 수 있다. 

음악의 혁신 사례의 또 다른 예로서 계명창법(Solmisation, 불어로 솔페쥬)을 들 수 있다.  각 음은 보통명사로서의 고유한 이름 (음명)을 가지고 있고 도레미파솔라시는 이태리에서 사용하는 음명이다. 우리나라 음명은 다라마바사가나, 영미의 음명은 CDEFGAB이다. 따라서 음명은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약 천 년 전, 귀도 다레쪼 (Guido d'Arezzo)란 이태리 사람이 음정이 바뀌어도, 즉 위치가 달라져도 여전히 도레미파솔라시로 노래를 부르는 방안을 창안하였다. 즉 고정되어 있는 음명을 이동시켜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다. 이를 이동도법이라 한다 (Moved Do). 조가 바뀌어도 언제나 계명으로 쉽게 노래 부를 수 있다. ‘고정(Fixed)’에서 ‘이동(Fixed)’으로 발상을 전환한 것은 대단한 혁신이다. 우리는 평소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달리 생각해 봄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창조할 수 있음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귀도 다레쪼는 ‘세례요한의 찬가’에 나오는 가사의 첫 글자를 따서 계명창을 창안하였다. 가사의 원어와 그 의미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Ut queant laxis Resonare fibris, Mira gestorum Famuli tuorum, Solve polluti  Labii reatum,  Sancte Joannes (번역: 세례자 요한이시여 들어 주소서, 위대한 당신 업적 기묘하오니, 목소리 가다듬어 찬양하도록, 때 묻은 우리 입술 씻어 주소서). 당시에는 지금의 Do를 Ut (우트)라 불렀는데 16세기경에 Do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Ut를 쓰기도 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살펴보자. 서양 음악도 여타 과학문명처럼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태리 음명 '도레미파솔라시'는 아랍어 '달라밈파솔람신 (dal ra mim fa sol lam sin)'에서 왔다고 한다. 11세기 몬테카시노에서 라틴어로 된 서적에 이 기록이 나오는데, 귀도 다레쪼가 이 책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악보 편찬에 영향을 준 제지술 또한 책의 문명이라 불리는 이슬람권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다. 751년 아랍-당나라 탈라스 전투에서 중국 제지기술자들이 잡혀가고 이들을 통해 제지술이 이슬람권에 전해졌다. 이슬람 세력의 확장은 꾸란 보급, 이슬람 문화 전파 등을 가능케 한 제지술의 역할이 컸다. 

유럽 중세시대에 흑사병이 발단이 되어 사람들이 인문주의에 눈을 뜨고 서구 문명의 원천인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재평가하게 된다. 당시 플라톤 등 고전 작품들이 이슬람권에서 보존되었다가 유럽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이는 르네상스를 언급할 때 통상 거론되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식이 이슬람권에 그대로 보존되었다가 후일 유럽이 되찾은 것이 아니다. 이슬람에서 서구로 넘어간 지식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식 원형에다 인도, 페르시아, 중국 등의 지식이 더해져서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깨끗한 물이라도 고이면 썩고 흐르면 맑은 상태를 유지하듯이 국가, 사회, 기업, 개인도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융합과정을 통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개인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럴수록 새로운 세상을 창출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코로나의 특성은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서 곧 가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거울삼아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심중을 헤아리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는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는 징검다리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이타주의 세상을 열어나가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원한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피터 드러크의 혜안을 새삼 떠올려 본다.

김형준 뮤직&경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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