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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의식의 전환기를 맞아
대북의식의 전환기를 맞아
  • 서중석 성균관대
  • 승인 2000.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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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서중석 (성균관대·사학)

필자는 지난 6·15남북정상회담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몇 사람한테 들은 바 있다. 분단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제서야 처음으로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반세기에 걸쳐 점철되었던 남과 북의 극단적인 비방과 증오심 고취가 떠올랐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도 남과 북의 관계가 이 만큼이라도 진전된 것에 경이감을 느끼며 마음 한 구석에서 뿌듯함을 갖는 것은 왜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북은 개방을 하지 않으면 고사하게 되어 있고, 개방을 하면 파탄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북한사회를 만들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야말로 의표를 찌르는 대담함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경의선 연결을 위한 삽질도 일대 사건이었다. 해방이 되어 미·소 점령군이 들어오면서 있었던 첫번째 큰 변화가 바로 경의선의 두절이었다.

남북관계가 새 전기를 맞으면서 여기저기서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만 정상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 아니라, 정치도 정상적으로 하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남북관계의 성과로 실정을 은폐하려는 것은 아닌가, 구조조정을 등한시하여 경제가 잘못 되면 남북관계가 바로 상처를 입지 않겠는가 등의 지적은 나올 수 있다. 극우반공세력이 극성스럽게 중상, 비방하기 때문에도 남북정책은 중의를 모아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일본 ‘우익’의 환심을 사는 대일정책이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등의 전반에 걸쳐서 과도하게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남북화해정책에 모순된다는 비판은 현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는 더욱더 좋아져야지 속도를 조절할 단계는 아니다. 더구나 예상보다 잘 돼 가고 있는 현재의 속도는 북의 적극성 때문이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속도조절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이른바 상호주의인데, 그것에 앞서 易地思之가 따라야 한다. 상호주의자들은 이산가족상봉이 인도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과거 남한의 태도를 무시하는 강변일 수 있다.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은 실질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밀리고 밀치는 형태로 되다보니까 피난살이가 많았고, 그래서 고아라고 불리는 남쪽만의 이산가족도 수만명, 어쩌면 그 이상에 이르렀다. 남쪽의 이산가족은 정부가 얼마든지 만나게 해줄 수 있었는데, 1983년에 와서야 KBS이산가족상봉이 있었다는 것은 왜일까.

이 정권, 박 정권이 한사코 남북교류 주장을 틀어막고 민간인의 통일논의조차 철저히 봉쇄한 것은 우선 극우독재권력의 ‘안보’ 때문이었다. 이들 정권은 분단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존립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켜 분단을 정권안보에 이용하였다. 긴장이 풀리고 자유가 있으면 독재정권은 설 땅이 없다. 그 점과 함께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가 남한에서 대북교류를 막은 주요 요인이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북이 연상될 수 있지만, 남한은 수십년 동안 북에 대해 ‘개방’을 하기가 어려웠다.

최근 서유럽의 몇몇 국가가 북을 승인하고, 미국과 일본의 대북 태도가 변하고 있는 것도 역지사지할 일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상호주의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였다. 절대적인 맹방인 것 같았던 중국이 ‘배신’하고 남한과 손잡았을 때, 북이 얼마나 처절한 패배감과 고립감을 맛보았을까. 이제 10년이 다 되어서야 그것도 부분적으로 교차 승인이라는 상호주의가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속도조절이나 상호주의가 아니다. 남북관계가 제대로 되려면 남한 사회에 정상적인 정치가 있어야 하고,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다원화 속에서 창조적 사상이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러려면 상호주의나 속도조절론에 내재해 있는 대북 대결보다도 한국사회를 해체시켜 모래알처럼 만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벌써 폐기물이 되었어야 할 냉전이데올로기 또는 극우반공이데올로기와 대결하여 그것을 무력하게 해야 한다. 마녀사냥에 골몰해온 반공이데올로기로는 결코 북에 대해 우위를 주장할 수 없다.

북은 한국전쟁후 어느 때보다도 기로에 처해 있다. 북의 폐쇄성과 경직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며, 빈곤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개방정책에 북의 기득권세력은 크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은 결단을 내렸다. 한국인은 땅이 좁고 산이 많아 狹量하다지만, 분단이 치른 그 지긋지긋한 50년간의 대가를 생각하면서 이제라도 남북관계에서 이해와 화해, 협력의 아량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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