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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자’ 시점으로 교수사회 은밀한 곳, 드러내다
‘내부 고발자’ 시점으로 교수사회 은밀한 곳, 드러내다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4.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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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테러』이덕화 / 푸른사상 刊 /

“이렇게 후배들이 자리가 없어서 죽을상을 하고 있는데, 일부러 지방대학 교수를 특채로 모셔온다는 것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거죠. (중략) 본인들이 모교 교수면 학과가 자기네 것이란 말인가, 후배들은 죽어 가는데 자기네 패거리 모으는 데만 혈안이니…”(은밀한 테러 174쪽)

 

소설 <은밀한 테러>는 교수사회에서 은밀하게 행해져 온, 그 집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들춰내기를 기피해 온 문제들을 직시하고 있다. 투명하지 않은 교수 임용, 각종 연구비 유용, 학문 후속 세대들에 대한 무책임한 방기 등을 작가는 ‘내부 고발자’의 시점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툭 뛰쳐나온 듯,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가상인물로 받아들여지기 거북할 정도다. 정욱은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과의 학과장으로서, 시류를 따르는 대학당국의 정책에 맞서다 좌절감을 맛보고, 민수와 현기는 최소한의 생계마저 보장되지 않는 시간강사 노릇을 하면서 자존감을 상실해 간다. 교수들의 자기 사람 끌어오기, 파벌 형성과 같은 교수사회 관행을 목도한 후 나락의 길로 빠져드는 민수는 결국, 학자로서 가장으로서 방황하다 죽음에 이른다.

 

지난해 서울대 백 아무개 강사의 자살을 현실로 접한 독자로서는 그리 놀랄 것도 없는 소설의 결말이지만, 소설이 현실보다 더 충격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기도 하다.

 

민수의 죽음은 “비젼없는 학문에 열정은 사라지고, 그림자만을 따라 살아야 한다”라는 우리사회 지식인의 ‘전락 공포’를 단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12년 동안 몸담아왔던 교수사회의 분열된 현실들을 공론화함으로써 교수사회 일상적 파시즘을 비판하고 있다.

 

정욱이 교과과정 개선에 대한 토론회에서 느끼는 혼란과 老 교수가 장사꾼으로 전락해가는 대학의 현실을 개탄하는 이야기들은 교수신문을 통해 한번쯤 지면화 됐음직한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대학평가 때문에 수업일수 16주를 채우기 위해 졸업여행이나 수학여행을 주말이나 방학에 가야 하고 학생상담을 위해 연구실 문을 열어놓아도 학생들이 오지 않아, 학생들을 잡아다 놓고 상담을 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대목은 소설이 현실의 투영임을 보여준다.

 

<은밀한 테러>의 작가인 이덕화 교수(평택대 국어국문학과)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경험 속에서 우러난 것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인물들은 가상”이라면서도 “대학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 교수는 “시간강사들이 막노동을 하거나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은 실제”라며 “총장선출문제나 교수임용 등은 순화시키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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