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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미술 연구자 박아림 교수 “몽골 미술은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정수”
몽골미술 연구자 박아림 교수 “몽골 미술은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정수”
  • 장혜승 기자
  • 승인 2020.08.19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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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림 교수
박아림 교수

“몽골은 길이 없어요. 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그러면 물웅덩이를 피해서 다니다 보니까 길을 만들면서 가게 되더군요.”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 장자는 길은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몽골 초원의 6-8세기 미술을 주제로 한 저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정수, 몽골 미술’을 펴낸 숙명여대 회화과 박아림 교수가 내민 종이에는 장자의 말과 함께, 연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지도교수가 들려준 답변이 적혀 있었다. “정해진 길이 없는 초원의 길 수천 킬로미터를 차로 달리는 고된 답사”를 통해 유라시아 미술 문화의 교류를 복원하는 길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하는 박 교수를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사진 제공=박아림 교수
사진 제공=박아림 교수

-몽골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연구주제인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교하기 위해서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동시기 고분미술을 공부하다 보니 6-8세기 몽골 미술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중국은 해당 시기가 남북조 수당(南北朝 隋唐) 시기여서 상당히 많은 발굴이 이뤄지고 연구도 축적이 된 반면, 북방민족의 고고미술역사는 사료도 부족하고 발굴도 많이 이뤄지지 않아 비교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와 비교되는 동시기의 북방민족으로는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등인데 흉노나 선비에 비해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돌궐(6세기와 8세기 사이에 지금의 몽골에서 활동한 튀르크계 민족)의 고고미술을 찾음으로써 돌궐, 비잔틴으로 이어지는 초원로의 교류를 복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몽골에서 거의 첫 번째로 발견된 돌궐시기 벽화묘인 바얀노르묘를 실견한 이후로, 몽골의 돌궐시기 고고미술을 이제까지 연구해온 동아시아 고분 미술 안에서 종합하고 그 중요성을 찾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얀노르벽화묘 천정 동벽의 '견마도'. 바얀노르벽화묘는 인물도와 사신도가 들어간 최초의 몽골 시기 벽화묘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사진=박아림 교수 제공
바얀노르벽화묘 천정 동벽의 '견마도'. 바얀노르벽화묘는 인물도와 사신도가 들어간 최초의 몽골 시기 벽화묘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사진=박아림 교수 제공

 

-몽골미술의 초원로에서의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신다면.

“바얀노르묘에서 출토된 유물 중 비잔틴 금화를 담은 주머니가 있습니다. 돌궐의 부구트 제사유적의 비석에는 소그드인(주로 중앙아시아에서 동서로 중국 장안과 콘스탄티노플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 이란계의 민족)이 썼던 문자가 새겨져 있고, 석인상의 손 모양이나 관의 장식 등에서 소그드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벽화는 고구려 사신이 돌궐을 통해 멀리 소그드 지역까지 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초원로를 통한 동서교류를 복원해 고대 한국의 동서교류상까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서문에서 몽골 고고미술 연구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책임감이신지요.

“몽골의 에르데네볼드교수와 함께 답사를 하면서 본인의 나라인 몽골을 자랑스러워하고 가능한 많은 몽골의 중요한 역사유적과 유물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미술사가 발달하지 않은 몽골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접하게 된 것을 행운이자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알고 있는 벽화고분, 동아시아 장의미술(葬儀美術)의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연구 범위를 넓혀 몽골의 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정립시키고 싶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바얀노르묘에서 출토된 비잔틴 금화 E형. 6-8세기 돌궐과 비잔틴 제국의 교류를 보여주는 부장품으로 의미가 있다. 사진 제공=박아림 교수
바얀노르묘에서 출토된 비잔틴 금화 E형. 6-8세기 돌궐과 비잔틴 제국의 교류를 보여주는 부장품으로 의미가 있다. 사진 제공=박아림 교수

-'매력적인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하셨는데 몽골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는지요.

“몽골의 아름다운 자연, 아직 연구되지 못한 유적과 유물들, 연구의 잠재력(potential)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2018년 몽골 답사를 지도교수님인 낸시 스타인하트 교수님과 마치고 나서 메일을 주고 받은 것을 며칠 전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답사의 마지막 며칠은 정말 힘들어서 다시는 못 갈 것 같다고 제가 써서 보냈더니, 지도교수님이 그래도 앞으로 연구의 잠재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시 갈 것이라고 하신 것을 보고 웃었습니다. 답사를 다닐 때는 힘들지만, 그리고 끝난 후에는 다시 못 갈 것 같은 마음이지만 초원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도시의 소음과 번잡을 접하게 되면 바로 초원이 생각나서 돌아가고 싶어지는 매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책을 집필하고 몽골미술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점은 무엇인지요.

“길이 없는 길을 작은 지프로 다니면서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얹힌 채로 다니는 법을 익혀야 했을 때, 여름철 급변하는 기후로 인해 편하거나 가까운 길로 가지 못하고, 두세 배 이상 돌아가는 비포장도로로 한없이 달려야 했을 때, 먹거나 자는 것에 까다롭지 않은 편인데도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대로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지요.

“지도교수이신 낸시 스타인하트 선생님이 추천사에 쓰신 것처럼 몽골 답사로 인해 이제까지의 문화 주체를 중국으로만 여기던 인식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했을 때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중국의 고분벽화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연구의 범위가 벽화묘에서 나온 부장품 하나하나에 중앙아시아가 공유하는 문화적 현상들이 반영된 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던 중화문명을 벗어나 초원의 지평선처럼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몽골 초원의 6-8세기 미술이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과제를 3년째 진행 중입니다. 몽골의 바얀노르벽화묘와 복고을돌묘가 1차 년도의 주제였고, 몽골 초원의 돌궐시기 석인상이 2차 년도 주제였는데 이번에 몽골미술 책을 냄으로써 1, 2차년도 연구를 부족하지만 마무리지었습니다. 
3차년도는 몽골과 중국 및 중앙아시아의 돌궐과 소그드 미술의 종합 연구로 돌궐을 넘어 동서투르키스탄과 소그드, 비잔틴,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동서교류입니다. 돌궐, 위구르 유목제국의 지배층과 협력해 동쪽의 중국, 서쪽의 비잔틴 제국과 사산 왕조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무역을 장악한 서투르키스탄 출신의 소그드인들과 연계성 속에서 돌궐의 미술을 연구하고자 합니다. 10월에 소그드 학회에서 일부 내용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외에 전공인 중국의 한-당대 고분벽화에 대한 개설서 성격의 책과 유라시아에서 본 고구려 고분벽화라는 교양총서를 올해 안에 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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