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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불순한 전경련
교수논평: 불순한 전경련
  • 박정원 상지대
  • 승인 2004.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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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 ©
영리목적의 기업형 전문대학 설립허용을 요구한 지난 3월 4일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고등교육개혁실천방안’이라는 보고서는 일부 검토해 볼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육의 전면적 시장화를 주장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수도권 대학 신증설 허용, 대학교육의 대외개방, 대학간 경쟁촉진, 기부금 입학제 실시, 대학간 M&A 인정, 법인해산 시 잔여재산 처리보장, 등록금 자율화 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4년제 대학과 대학원 대학의 영리법인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경련의 보고서는 몇 가지 측면에서 의혹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전경련은 고등교육혁신을 위해 영리법인의 이윤추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동기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입학정원이 1,060명에 불과한 어떤 4년제 대학의 총장이 지난 8년 동안 310억원의 학교운영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되었다. 맘먹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 수 있는 데가 바로 이 분야이니 전경련 같은 단체가 침을 흘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겠지만, 이윤추구보장과 고등교육혁신과는 아무래도 인과관계가 부족하다. 영리법인이 되면 부정과 비리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말 역시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오히려 사학의 갖가지 부정과 비리는 모두 합리적∙효율적 경영으로 포장될 것이다.


둘째, 전경련은 자신의 주장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영리 고등교육기관과 우리의 전문대학이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영리대학인 Phoenix, Devry, Toyota, Motorola, Disney 등은 사실상 정규대학이라 보기 어려우며,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기관들에서도 이들을 평가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특수한 기술취득을 필요로 하는 성인들과 전역을 앞둔 군인들 일부를 겨냥하고 있으며, 우리의 기술학원에 더 맞는 성인 교육기관이다. 이들 영리추구대학들은 미국의 고등교육혁신과 별로 관련이 없으며, 핵심 교육기관인 우리의 대학이나 전문대학과는 전혀 다르다. 전경련은 사례를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교육에 대한 인식의 한계와 자신의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보인다. 전경련은 “산업계의 인력수요에 맞는 고등교육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여, 산업계 인력수요에 따라 고등교육이 통제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교육이 기업의 인력수요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세계 어디서나 재계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인간의 내재적 가치가 개발된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기업이 당장에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기업내 인적자본 훈련비용을 대학과 학부모에 떠넘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전경련의 주장은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다. 우리 대학교육이 질 높은 수도권대학 중심으로 개편되기를 원하면서, ‘수도권 대학 설립과 정원 자율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인사와 채용에서 지방대 출신을 차별함으로써 결국 지역간 균형 있는 대학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온 전경련은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없을 것 같다. 기부금 입학제의 도입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그 혜택이 결국 자기회원 자녀들에게 돌아갈 텐데, 이 얼마나 낯간지러운 요구인가? 전경련은 미국대학의 기여입학제를 말하고 있지만, 미국대학의 발전에 미국기업들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는 왜 말 안하는지 궁금하다.


결국 전경련의 보고서는 정경유착과 부동산투기, 탈세와 뇌물공여 등 부도덕한 온갖 천민자본주의적 수단으로 몸집을 불려온 한국의 재계가 이제 교육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만을 심어줄 뿐이다. 전경련은 이러한 속 보이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과감한 연구기금 출연과 학벌철폐∙지방대 차별철폐 등으로 우리 대학들에 조건 없이 도움을 주고, 그 대신 우리 대학과 학문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과실을 향수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서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됨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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