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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도 없는 휴게실서 노동자 숨진 지 1년…개선 계획은 ‘깜깜’
창문도 없는 휴게실서 노동자 숨진 지 1년…개선 계획은 ‘깜깜’
  • 장혜승 기자
  • 승인 2020.08.13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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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전체 건물 중 휴게실 ‘0’ 45%
대학들, 개선 계획 없어…“휴게실 법제화보다 노동자 휴게권 보장 유인책 필요”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제2공학관(302동) 남자 휴게실. 사진 제공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제2공학관(302동) 남자 휴게실. 사진 제공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제2공학관 건물에서 근무해온 청소 노동자가 열악한 휴게실 안에서 잠들었다 숨졌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서울대 등 국내 대학들은 아직 뚜렷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시 고인이 사용하던 ‘휴게 공간’은 계단 밑에 합판과 샌드위치 판넬을 이어붙여 만든 1평 남짓한 가건물이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창문도 없는 건물이어서 논란이 됐다. 추모 열기와 더불어 서울대생들은 대학 내 노동자들의 환경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민주노총 등 25개 단체가 모여 ‘서울대학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발족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이 사망 사건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당시 노동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실제 개선은 사실상 답보상태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건물 총 166곳 가운데 청소 노동자 휴게실이 있는 건물은 90곳(54.22%)에 그쳤다. △명지대(자연캠퍼스)는 40곳 가운데 16곳(40%) △동덕여대 17곳 중 8곳(47.06%) △숙명여대 29곳 중 16곳(55.17%) △건국대 32곳 중 18곳(56.25%) △성신여대 15곳 중 9곳(60%) △세종대 25곳 중 17곳(68%)에 휴게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숭실대가 24곳 중 22곳(91.67%), 경희대가 52곳 중 51곳으로 대부분의 건물에 휴게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에 따르면 서울대 본부는 지난해 9월 청소 노동자 휴게실 146곳을 전수조사해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구체적인 개선 계획안을 내놨다. 비서공은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만 한정해서 개선안을 내놓은 것”이라며 “서울대 본부가 학내 노동환경 개선 문제를 단순 면피용으로만 대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제2공학관(302동) 남자 휴게실. 사진 제공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제2공학관(302동) 남자 휴게실. 사진 제공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비서공에 따르면 본부는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정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의 체크리스트(34개 항목)에 따라 세부적인 개선 계획을 내놓았다. 반면 기계·전기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10월 개선 계획을 내놓긴 했으나, 청소 노동자의 경우와 달리 체크리스트의 일부 항목인 냉난방기·환기시설·샤워시설의 구비 여부만을 기준으로 수립돼 미흡하다는 것이 비서공의 주장이다. 한편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내 건물 총 166곳 가운데 76곳(45.8%)은 휴게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대학도 일하는 건물에 휴게실이 있는 경우가 전체 건물의 50% 수준을 맴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식을 취하려면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하는 청소 노동자가 절반 이상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서울 지역 대학들은 올해 안에 청소 노동자 휴게실을 리모델링하거나 개선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의 경우 모든 휴게실에 창문 및 환기, 냉난방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관계자도 ”우리 대학은 캠퍼스가 좁아 건물 대부분이 도보 5~10분 이내로 이동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제2공학관(302동) 남자 휴게실. 사진 제공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지난해 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제2공학관(302동) 남자 휴게실. 사진 제공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대학 내 노동자 근로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정부 정책과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원철 공인노무사는 “정부에서 휴게 공간 등 산업안전시설 개선을 위해 ‘산업재해예방시설자금 융자보조’를 해 주는데, 이 제도의 심사 기준을 낮추는 동시에 국가에서 필요한 비용은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유공자도 휴게공간 개선, 대학 내 노동자 인식 및 문화개선 등에 대한 포상으로 확대하고, 대학 측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근로 감독 면제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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