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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 교수신문
  • 승인 2020.08.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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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정신사 한계 극복 노력…한반도 개벽사상과 회통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지음 | 창비

로런스 작품 정밀하게 읽고 분석…통찰력 있는 문학평론
저자 문제의식 더해 새 사상 기초 구축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문학이론적 비평에 한정되지 않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니체와 맑스, 루카치와 하이데거, 프로이트 융 라깡 들뢰즈 데리다 랑씨에르 바디우 등 서양사상에 더해 남·북방불교와 유가적 사유, 동학, 증산도, 원불교까지 포괄한다.

2천년 서양정신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로런스의 시도에 동양의 전통사상 및 한반도 고유의 개벽사상과 접점을 만들어내며 자본주의적 근대의 한계를 벗어나 문명대전환의 큰 시야를 여는 저자의 사유는 전무후무하리만큼 독보적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일찍이 주체적 영문학 연구를 제창하고 한반도 현실에 실천적으로 개입해온 저자의 50여년 수행의 결실이다.

그러나 이 책이 큰 시야의 이론적 논의만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로런스 작품을 대목대목 섬세하고 정밀하게 읽고 분석하는 문장들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통찰력을 제시하는 좋은 문학평론을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철학·미학·사회학, 역사와 정치, 종교까지 다양한 분야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걸출한 지성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더 인간적이고 진정한 새 세상을 향한 사유가 설득력 있게 전개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서양’의 문학가 D. H. 로런스를 왜 ‘개벽사상가’라는 일견 모순적인 용어로 지칭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룬다. D. H. 로런스(1885~1930)는 짧은 생애에 시, 소설, 평론, 희곡, 에세이 등 전 장르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20세기 영문학의 거장이다. 저자 백낙청이 가장 주목하는 로런스의 성과는 동시대인의 상식뿐 아니라 서양의 전통적 사고방식 자체를 뛰어넘으려는 끈질긴 시도를 했고 또 그것에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음양론을 방불케 하는 우주론과 진리관을 제시하고, 물질적 존재의 영역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실존(existence)과 전혀 다른 차원을 달성하는 사건으로서의 being(~이다+있다)이란 개념을 주장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발상은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이데아와 현상세계의 이분법과 형이상학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넘어선 획기적인 돌파이며, 이런 획기성은 그 앞세대의 변혁사상가로 꼽히는 맑스나 니체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로써 불교와 노장사상, 후천개벽사상 등 동아시아 사상과의 회통 가능성을 훌륭하게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저자는 로런스를 ‘서양의 개벽사상가’로 이름붙인다. 로런스는 이러한 가능성을 주로 장편소설을 통해 열었다. 그의 장편 『무지개』(1915)와 『연애하는 여인들』(1920)은 자연주의적 재현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삶,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핍진한 경지인 ‘진정한 리얼리즘’을 성취한 작품들이다. 근대 장편소설이 엄연히 근대의 산물이되 탁월한 작품일수록 근대극복의 비전을 내장한다는 점에서, 두 장편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에 대한 고전적 서사랄 수 있다.

또한 로런스는 거대한 생명체로 존재하는 우주에서 인간이 그 생명과 얼마나 합일하느냐에 따라 인류사회의 운명이 결정되며, 그런 점에서 태양을 잃고 우주를 등진 근대문명은 몰락과 대전환을 앞두고 있다는 우주관과 생명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사회적 실천과 연결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동아시아 후천개벽사상과의 친화성을 지닌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문의 2부 11장의 글을 통해 로런스의 주요한 작품들을 분석하는 가운데 그의 사유를 총괄적으로 종합하고 저자 자신의 문제의식을 더해 새로운 사상적 기초를 구축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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