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진 논설위원 서울대 사회학 © 교수신문 |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되는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주변에 ‘음모론’과 ‘작전설’이 솔솔 지펴지고 있다. 구체제 세력들이 노무현대통령을 끌어내고 권력찬탈을 하기 위해 탄핵소추를 시도했다는 것이 음모론이다. 개헌논의와 총선연기론이 그 연장에 있다. 반면 노무현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유도해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등에 업고 총선에서 다수당을 확보한다는 것이 작전설이다. 싹슬이설과 정계개편이 그 맥락에 있다.
이러한 음모론과 작전설의 진위를 따지고 싶지 않다. 너무 어처구니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신뢰도가 높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산법들이다. 그럼에도 여러 ‘논’과 ‘설’들이 회자되는 것은 우리 정치가 예측가능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국민이 당혹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하야와 시해에 의해 권력공백이 이루어진 경우는 있었다. 이승만 전대통령과 박정희 전대통령의 사례다. 그러나 탄핵소추에 의해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국회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책임제 정부형태아래에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에 의해 대통령 권력에 대한 통제가 가능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국회가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종의 견제장치로서 탄핵제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다는 규정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악용될 소지가 전혀 없지 않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갖는 민주주의 선발국은 물론 후발국에서도 탄핵소추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탄핵제도의 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남용은 엄청난 정치적 비용과 대가를 수반한다. 대통령의 자격정지로 인한 국정공백이 그 하나다. 또한 국회의 결정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온 나라가 반목과 대립으로 치닫는다. 우리처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없는 경우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대결이 국회와 국민 사이의 갈등으로 전이되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선거법위반, 권력형 부정부패, 경제파탄 책임이 탄핵근거가 되는가는 헌법재판소가 앞으로 법리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신속하게 탄핵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법률심리상 헌법재판소가 총선전에 탄핵문제를 처리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탄핵정국아래에서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이 와중에서 총선거가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감정대결의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번 탄핵정국은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과 정치역량을 가늠케하는 분수령이 된다. 그러므로 극심한 갈등과 분란을 이겨내는 성숙된 민주시민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여야는 탄핵정국을 또다시 당리와 정략으로 편용해서는 안된다. 탄핵사태에 대한 책임추궁도 중요하지만 시민단체도 국민이 정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계도의 지도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탄핵사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민주당 뿐 아니라 노무현대통령도 깊이 자성해야 한다. 이는 대의성의 왜곡이요, 책임성의 결여다. 피해자는 국민이다. 우리는 지금 여러 국내외적 난제를 앞에 두고 있다. 난제해결을 위한 지혜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 ‘똥묻은 개’와 ‘겨묻은 개’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갈등의 제도다. 親盧와 反盧의 견해차도 좋지만 이념과 세대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노력이 아쉽다. 합리적 진보와 건강한 보수가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것을 존중하는 포용과 극복의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심판은 총선에서 정책으로 하면 된다. 우리 지식인들은 反求諸己의 정신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질서와 법치에 따라 탄핵정국을 이겨내야 민주주의도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