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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연구통을 살려야
대학정론-연구통을 살려야
  • 김정근 논설위원
  • 승인 2004.03.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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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교육이 위기라고 말한다. 이구동성이다. 2000년대 들어 위기담론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아우성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 위기담론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가? ‘대학원의 공동화’ ‘모집정원미달’ ‘박사실업자’ 등의 언표에 위기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대학원이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은 ‘장사’가 안 되는 데 있다. 팔구십 년대 비교적 잘 되던 충원과 취업이 이제 더 이상 안 되는 데 문제가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박사만 잘 안 되었는데 지금은 석사도 잘 안 된다. 그리고 이 안 되는 ‘장사’는 필요한 인력이 어느 정도 채워진 탓도 있지만 다른 한편 국산이 외국산에 밀리기 때문이다. 토박사가 양박사에 밀리는 형국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밀리는 형국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국내 석사, 박사 학위의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 학문의 해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처방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대개 ‘국가 정책’ ‘행정과 재정’ ‘학제’ ‘교육과정’ ‘학사관리’ ‘교육연구환경’ ‘산학협동’ ‘특성화’ 등의 꼭지 밑에 논의가 전개된다.

물론 이런 것들이 방안이 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몫을 담당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논의의 틀이 이처럼 하드웨어 일변도로 잡혀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시계 부속품이 든 주머니를 힘껏 흔들기만 하면 명품 시계가 만들어진다거나 하우스를 잘 지으면 좋은 화훼 농장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사람의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명장이 명품시계를 만들고 화훼 기술자가 좋은 꽃을 피우는 것이 이치 아닌가. 학문적 내실, 수월성, 경쟁력을 말할 때 교수 부분은 필수적이다.

이제 교수를 말해야 한다. 우리 대학원을 살리는 교수 요소를 생각하며 지적해두고 싶은 대목이 있다. 그것은 연구통 또는 공부통이라고 불러볼 수 있는 사람들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계통의 연구자를 가려내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투자해 수월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 때문에 국내 학위의 값이 올라가고 교육 수요자의 외국행이 재고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대학마다 전공 분야마다 이런 연구자는 꽤 많이 있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고, 보직도 피하고, 프로젝트에도 큰 관심이 없는, 그러면서 우수 연구업적을 꾸준히 생산해내는, 이른바 못말리는 연구자에 대한 우대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배치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경쟁력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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