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5:00 (금)
[특별기고]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의 진화
[특별기고]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의 진화
  • 성열홍
  • 승인 2020.07.30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_ 성열홍 홍익대학교 광고홍보대학원장

미디어와 콘텐츠의 메커니즘

21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이 도구는 다시 우리를 형성한다(We shape our tools, and then our tools shape us)”는 그의 말은 인류가 만든 라디오, TV, 전화 등의 기술이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을 제공하고, 인간의 사고방식과 감성을 재형성한다는 뜻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대중의 눈을 뜨게 하고 중세의 종교권력을 무너트렸듯 기술의 변화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통해 사람의 생각은 물론, 시대까지 바꾸고 있다. 수메르인들의 불다루는 기술은 인류의 문명을 창조하였고,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바퀴와 전차는 인류를 진화시킨 최고의 발명품이 되었다. 진화는 인류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변화를 의미하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진화에 의한 탄생된 문명의 도래는 운명처럼 이미 정해진 인류의 미래가 되었다.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미디어 역시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문화의 전파와 공유에 영향을 미친 상징체계이자 문명의 산물로서 오랫동안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미디어 역사를 살펴 보면 콘텐츠보다는 누가 플랫폼을 차지하느냐가 곧 권력의 흐름이었다. 누군가가 시장을 만들고 운영원칙을 정하면 모든 사람들은 그 룰에 의해 거래를 하게 된다. 시장이 서면, 그 후에 물건을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이 모이고 여기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강력한 유통망을 가진 사업자는 시장을 지배해 왔다. 17세기 동인도 회사는 아시아와의 무역 독점권을 기반으로 성장하였고, 카네기 철강회사는 철도를 깔아 부를 축적하였으며, 월마트는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확보함으로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규모를 키웠다. 미디어 시장 역시 플랫폼의 역량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신문사는 고가의 윤전기로 종이신문을 대량으로 인쇄하여 전국의 배포망을 통해 하루 단위로 신문을 제공했으며 방송사의 전파망과 송신기술이란 플랫폼 메커니즘도 이들의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이러한 영향력이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플랫폼에서 무경제의 네트워크 비즈니스로 변화

어느 날 갑자기 미디어 업계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해 비약적인 퀀텀 점프(quantum Jump)을 하게 되었다. 스마트 폰이 ‘뇌’이고 ‘손’인 호모사피엔스의 소비행동들은 빠르게 문명의 표준이 되었다. 아마존으로 인해서 미국의 서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였고,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백화점도 파산하는 지경에 빠졌자. 아울러 온라인 매체의 범람으로 굴지의 신문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그 위세가 대폭 축소되었다. 국내도 마찬가지이다. 적자의 늪에 빠진 지상파 3사의 수익률이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KBS 양승동 사장은 경영개선을 위해 향후 1000명의 직원을 줄이고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 하였다. 현재의 미디어는 콘텐츠를 연결하는 매개자, 메신저가 만들어 나가는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그리고 티빙과 같이 콘텐츠에 대한 사용자 참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네트워크를 말한다. 이들은 이용자들을 더 가깝게 연결하고, 콘텐츠를 더 쉽게 구독하도록 도와주고,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주는 데이터 인텔리전스 기반의 미디어 플랫폼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열광하는 SNS에 대해 한때 우리는 시간 낭비이고, 인간관계의 단절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새 스마트폰 문명은 시장 생태계의 파괴적 혁신자가 되어 모든 비즈니스 구조를 바꾸어 놓고 있는 양날의 검이 되어버렸다. 인터넷, 블로그, SNS 등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패턴의 정보 교환과 소비가 이루어지면서 롱테일의 법칙에서 설명하듯이 사소한 다수가 의미 있는 다수로 변화하면서 비즈니스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포노사피엔스라는 신인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방식의 인간형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쌍방향으로 소통한다.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개성이 넘쳐나는 ‘1인 미디어’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모이면서 동영상 퍼스트 플랫폼의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미디어 기술은 K팝에서 보듯이 전 세계를 삽시간에 하나의 빌리지(village)로 만들어 놓았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를 많이 가진 가상의 국가가 되었다. 구글은 지식의 보고로서 구글에 없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유튜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문화 데이터 베이스가 되었다『유튜브 컬처』의 저자 케빈 알로카(Kevin Alloca)는 "외계인이 우리 지구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구글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유튜브를 보여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80%가 기상 후 15분 이내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80%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발명품이 거꾸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근원적 독점(radical monopoly)의 현상을 제공하고 있다.뉴미디어를 통한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는 지속적으로 링크를 만들게 되고, 네트워크의 확장은 미디어를 진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군집한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서는 시대

언제나 유통망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 대체된다. 현재 레거시 미디어가 겪고 있는 위기는 IoT 기술 플랫폼에 밀려 시청자 도달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데 전세를 역전할 방법은 당장 보이지 않는다. 유통망 경쟁에서 밀리는 레거시 미디어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결국 제품의 질, 즉 콘텐츠 경쟁력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신문사와 방송사의 주력 제품 즉 기사와 뉴스가 어느 순간 콘텐츠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콘텐츠를 플랫폼에 맞추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플랫폼화 하겠다”는 성지환 72초TV 대표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가슴에 와 닿은 말이다. 조명섭군은 지난해 KBS의 ‘가요가 좋아’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20대 트롯가수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그가 부른 ‘신라의 달밤’을 KBS를 통해 시청한 사람들이 아니다. 누군가가 생성한 동영상 링크를 클릭해 시청하였고, 거기에 달린 수많은 댓글과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팬덤이 만들어졌다. 임영웅, 영탁, 정동원 군의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유튜브를 통해 수없이 반복 청취한다.

소위 무경계 미디어가 기존의 경계 미디어를 점차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은  마치 ‘다윗 개미들이 골리앗을 부수는 미디어 생태계 혁명의 본격화’라고 볼 수 있다. ‘오가닉 미디어’의 저자 윤지영(2014)은 네크워크 내의 구성원들이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연결하게 함으로써 콘텐츠의 생명력은 유지된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유기적 네트워크를 새로운 미디어 현상의 시작으로 설명한다. ‘큰 그릇’의 역할을 하던 미디어는 스스로 그 경계를 무너뜨리며 변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OTT(Over The Top: 온라인 스트리밍을 뜻함) 서비스의 활성화 현상이다.넷플릭스나 티빙(Tving)과 같은 OTT 서비스는 기존의 TV 콘텐츠 이용에서 시공간적 제약을 해체했다.

성열홍(홍익대학교 광고홍보대학원장)
성열홍(홍익대학교 광고홍보대학원장)

 

가장 큰 양상은 플랫폼의 장벽을 낮추고, 연결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콘텐츠 플랫폼의 서비스가 그동안 패키저(package)였다면 이제는 디지털 스토어(digital store)로 진화하였다. 집에 TV가 없는 Zero TV, 일인 가구 급증, 몰아보기(being viewing)라는 소비자 환경이 도래하였다. 또한 이용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CX(콘텐츠 경험, Content Experience)를 확산한다. 이제 미디어 기업의 서비스 모델은  ‘연결’ 혹은 ‘네크워크’가 중심축이 되어 발전하는 형태이다. 세월에 따라 취향이 바뀌고 있는 만큼 콘텐츠의 문법도 바뀐다. 무경계 미디어에서는 위계보다는 자율성,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보다는 수평적 소통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쓴이 성열홍 원장은 저서로 <딥씽킹Deep Thinking>(21세기북스2014)을 비롯하여 <미디어 기업을 넘어 콘텐츠 기업으로>(김영사, 2010),<미디어 소비자 광고의 변화>(한경사 2008),<케이블TV사업의 실제>(김영사 2003)가 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문화관광부의 사회과학분야 우수저서로 선정되었다. 영화채널의 수평적 결합에 따른 경제적 효율성 연구」,「양방향광고 및 T-Commerce 정책연구」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