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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존재 목적과 배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학의 존재 목적과 배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20.07.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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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에 가는가 | 앤드루 델반코 저 / 이재희 역 | 문학동네 | 페이지 312

무려 12년 동안을 앞만 보며 입시 경쟁을 통과하고 있는 대학 입시생들에게 어떤 얘기가 필요할까. 지금까지 그들의 인생에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필수 코스라 믿어왔을 그 대학은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나는 도발적이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항해를 앞둔 배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노를 저어선 어디에도 닿을 수 없다. 목적과 동기를 확인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회의(懷疑)하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대학의 현실에 관해 조금 충격적인 얘기부터 먼저 해야겠다.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옳다고 믿어왔던 삶의 방식과 가치가 일순간에 무너졌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방역 수칙에 따라 비대면 교육이 기본이 되면서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면 과연 대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저 기존의 수동적 일방향 교육을 온디맨드(on-demand, 모바일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통해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즉각적으로 맞춤형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 활동)나 실시간 영상으로 반복하면서 대학이 졸업장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한다면 온라인으로만 수업하는 가상대학(온라인 대학)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한국 대학의 위기를 얘기해 보자.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속된 출산율 저하로 2018년을 정점으로 고등학교 3학년 졸업생 수가 전체 대학교 신입생 모집 인원보다 낮아졌다. 소위 학령인구 절벽은 그 이후 급전직하로 떨어져 3년 후인 2023년엔 졸업생 수가 무려 입학정원의 절반이 될 예정이다. 대학 입장에선 사라지는 곳이 속출할 것이란 의미이지만, 입시생들 입장에선 어쩌면 대학을 골라갈 수 있는, 지금처럼 입시 지옥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제 다시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왜 대학에 가야 하고, 가려고 하는가 묻고 싶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그동안 묻지 않았던 대학의 존재 목적과 배움의 본질을 질문하게 했고, 인구 구조 변화는 치열한 점수 경쟁이 대학 입시를 결정하는 당연한 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대학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고 우리는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질문을 던져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고의 관성을 깨고 대학에 가는 이유,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삶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이 책의 문제 의식은 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초문명 사회를 목전에 둔 세계가 오히려 반문명적이고 비지성적 세계로 추락하고 있고, 엘리트의 지배를 당연시하는 능력주의가 확대되는 현실에서 시작된다. 저자인 엔드루 델반코는 미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이기에 주로 미국 대학의 현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최근 이런 세계적 흐름은 대다수 국가 공통의 현상이란 점에서 충분히 우리에게도 같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신간 ‘반지성주의 시대’(2018)에서 저자 수전 제이코비가 설파한 바와 같이 지난 2016년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맹목적 자국 이기주의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지성주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반지성주의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계몽주의의 이성적 합리주의를 일깨웠던 유럽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근본주의 극우 기독교와 태극기 부대가 판을 치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는 반지성주의의 주된 원인을 과학과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 근본주의 종교에서 찾지만, 대학을 포함한 공교육의 실패와 그로 인한 대중의 낮은 시민의식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초강대국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코로나19의 최대 감염 국가가 된 것도 그런 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반지성주의가 득세하는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두 번째로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능력에 따른 차별이야말로 공정한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 바로 능력주의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5장 ‘멋진 신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현대사회의 능력주의(meritocracy) 문제는 사실 1958년 발표된 마이클 영의 소설 ‘능력주의 사회의 등장’이 인식의 계기가 됐다. 선천적 ‘지능’과 후천적 ‘노력’을 더한 것이 ‘능력’이므로 능력이야말로 보상을 결정할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생각이 바로 능력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는 세상을 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더 불평등하고 계급화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능력주의 신화가 우리나라에선 소위 명문대학과 기타 대학으로 나눈 학벌사회와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약육강식의 차별사회를 공고히 한 주범이라 할 수 있다.

반지성주의와 능력주의라는 괴물이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대학이 깨인 민주 시민을 양성하고 비판적 사고를 일깨우는 의식의 방패막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본질과 역할은 경쟁을 최고의 선이라 여겨 차별을 양산하는 도도한 세계의 흐름에 맞서 ‘사색’과 ‘성찰’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의 공동체 의식과 민주 시민의식을 일깨우는 데 있다. 이와 같이 대학이 왜 존재하고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그 목적과 이유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김선진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김선진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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