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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셰익스피어, 감옥에 가다!
[원로칼럼] 셰익스피어, 감옥에 가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7.2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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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사진 자료-1
셰익스피어 사진 자료-1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라는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은 없어도 많은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말할 수 있으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임을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최고의 극작가로 전 세계에 알려져 칭송을 받고 있지만 실상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확실한 것은 거의 없고 추측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매년 4월 23일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탄생을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가 거행되는데, 이 생일 날짜도 합리적 추측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교구 기록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6일에 세례를 받았고, 대개 태어난 지 사흘 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4월 23일을 출생일로 간주하여 기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오로지 그의 작품만을 우리에게 남겼을 뿐 자신의 생애나 활동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그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기록 또한 거의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셰익스피어라는 극작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셰익스피어라는 가명으로 작품을 집필한 것이 아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생애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글의 제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가 감옥에 갔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갔다면 어떤 죄목으로 투옥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어떤 근거나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감옥에 갔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부터 감옥을 들락거렸고, 지금도 가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셰익스피어, 감옥에 가다’라는 의미는 작가 자신이 감옥에 투옥된 것이 아니라 그의 문학과 정신이 오래 전부터 감옥에서까지 꽃피고 있다는 뜻이다.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지 400년이 넘었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는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의 예리한 통찰력은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 감옥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셰익스피어 강의나 이들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는 공연 프로그램은 상당한 교화의 효력이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절망에 빠진 무기수가 셰익스피어 강의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인식하는 과정을 그린 책,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2014)는 셰익스피어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2012)는 감옥의 흉악범들이 '줄리어스 시저'의 공연에 직접 배우로 참여하여 셰익스피어를 만날 때 이들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심리적 변화를 그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 아일랜드’(Robben Island)에 세운 감옥에도 나타났다. ‘로벤 아일랜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 타운에서 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대서양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이다.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번역, 공연되고 있지만 남아프리카의 외딴 로벤 섬까지 침투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섬은 주로 정치범들을 수용한 곳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 불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한 민주투사들이 이곳에 투옥되면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했던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에 저항한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1990년 석방되기까지 27년의 투옥 생활 중 18년(1964-1982) 동안 이 섬에 감금되었다.

당시 악명 높던 로벤 섬의 감옥에서는 서신은 물론이고 서적 등 일반 출판물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으며, 검열이 매우 심해 이곳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가지 않는 곳은 없다.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이 감옥에 투옥된 소니 벤카트라스남(Sonny Benkatrathnam)이 부인에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요청한 후, 간수에게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이 전집의 표지에 디왈리 축제(인도의 3대 축제 중의 하나) 카드를 덧씌워 힌두교 경전으로 위장하여 손에 넣었다(사진1). 그는 이 전집을 동료 수감자들에게 돌려 가면서 읽도록 했고, 작품 내용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아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적게 했다. 400년 전에 살았던 한 백인은 20세기 후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범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을까?

 

셰익스피어 사진-2
셰익스피어 사진 자료 -2

 

오늘날 ‘로벤 아일랜드 바이블’(Robben Island Bible)이라고 알려진 이 셰익스피어 전집에서 만델라를 포함해 모두 34명의 수감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감동적이고, 의미있는 구절을 만나게 된다. 만델라는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다음의 대사에 서명을 하고, 1977년 12월 26이라고 날짜를 적었다(사진2).

비겁한 자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자는 오직 한번 죽을 뿐이다.

내가 이제껏 들어온 많은 놀라운 일 중에

가장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죽음을 겁낸다는거요.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라, 때가 되면 오는 건데. (2막 2장, 32-7)

Cowards die many times before their deaths;

The valiant never taste of death but once.

Of all the wonders that I yet have heard,

It seems to me most strange that men should fear;

Seeing that death, a necessary end,

Will come when it will come.

다른 수감자 월트 시슬루(Walt Sisulu)는 베니스의 상인의 유대인 샤일록(Sylock)이 기독교인들로부터 모욕을 당했을 때 했던 말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다.

그래도 난 어깨를 움츠리고 지금껏 참아왔어요.

참을성은 우리 유대인의 장기가 아닙니까? (1막 3장, 109-10)

Still have I borne it with a patient shrug,

For sufferance is the badge of all our tribe.

빌리 나이어(Billy Nair)는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Prospero)에 도전하는 칼리반(Caliban)의 대사에 서명을 했다.

이 섬은 우리 엄마 스코렛스가 내게 준 섬인데,

당신이 빼앗았어. (1막 2장, 332-33)

This island’s mine, by Sycorax my mother

Which thou tak’st from me.

로벤 섬에 투옥된 민주투사들이 억압과 인종차별의 고초를 겪을 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들에게 영감, 용기, 인내, 포용, 지혜 등을 제공했고, 결국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의 힘,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섬은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오늘날 인기 있는 역사 여행지로 바뀌었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감옥에 투옥되었던 사람이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정해룡,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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