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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하이에크가 필요한 이유
다양한 하이에크가 필요한 이유
  • 유철규 성공회대
  • 승인 2004.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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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리뷰-2004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유철규/성공회대·경제학

지난 2월 12일부터 이틀간 '참여정부 1년의 경제정책' 평가와 '한국경제의 개방정책' 평가를 전체회의의 주제로 삼아 '2004 경제학 공동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여기에는 32개 학회가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 하이에크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의 오전 섹션을 청중의 한 명으로 참관했다. 오전 섹션만 참관한 처지로 참관기를 쓰는 이유를 굳이 달자면, 학회를 '하이에크소사이어티'답게 만드는 두개의 글이 모두 오전에 발표됐기 때문이다. 복거일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민경국 강원대 교수의 '한국 헌법의 두 가지 오류와 자유의 헌법'이 그것이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서 발표자는 기존에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 '효율'을 강조한 나머지 자본주의의 비판자 혹은 반대자에게 정의라는 도덕적 아젠다를 내준 꼴이 됐다고 비판한다. 김대중 정부이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우리사회 체제의 변호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변호가 시급하다고 보는 발표자는 '정의'라는 도덕적 고지를 反자본주의 이념으로부터 되찾아 올 것을 요구했다.

학회의 대표적 논객으로서, 또 회원들의 표현을 빌면 "큰 정신적 버팀목"으로서 이념적 투사의 인상이 새로웠다. 정의라는 고지의 재탈환을 위해 원고지 6백매를 넘나드는 큰 글이 작성됐고, 여기에는 반과학주의 방법론부터 시장이론, 자생적 질서론, 진화론적 접근, 심리학 등에 걸친 하이에크의 방대함을 다시 보는 듯 다방면에 걸친 대단한 분량의 독서가 담겼다. 그 요결은 "재산 형성의 공헌에 기반해서 이루어진 재산권은 진화의 결과이고, 진화의 결과는 '자연스럽기' 때문에 정의롭다", "진정으로 정의로운 것은 자유로운 것이며, 자유로운 것은 정의롭다"는 주장으로 맺어진다.

개인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간섭과 강제(공동체적 가치)는 어떤 내용인가라는 대륙적 자유주의 전통의 질문과 개인이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자유의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영국 자유주의의 전통을 잇는 질문간의 논쟁을 재연시킬 수도 있고, 자유와 정의가 현실 속에서 갖는 말뜻의 문제로 되돌아가 자칫 말장난의 경계를 오갈 수도 있는 그런  주장이기도 하다. 매력적이지만 위험해 보이는 이에 대한 지정토론은 전반적인 동감을 표현하는 가운데 매우 결정적인 문제도 제기했다.

이를테면 이번 발표가 '자본주의 對 사회주의'의 관점에 머물러 오늘날의 이슈인 '자본주의 對 자본주의'의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발표자가 여전히 냉전적 관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일 수도 있고, 상이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경직된 하나의 자본주의를 상정하는 우를 범하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이런 경우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필자의 노력이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탄력성을 부정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헌법의 두 가지 오류와 자유의 헌법' 또한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발표자의 평소 지론이기도 한 것으로 알지만, 우리사회의 정치적 혼란의 근원으로 시장실패나 정부 실패가 아닌 '헌법실패'를 꼽는다. 하이에크식 자유주의 헌정 구상에 입각하지 않고 무제한적 민주주의를 허용하는 헌법의 정신이 우리 사회를 휩쓰는 이해관계의 충돌 정치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로 인해 우리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들, 발표자의 예를 들면, 경제력 집중 및 남용 방지 조항을 필두로 여자의 권익과 복지향상에 이르기까지 십수개의 헌법조항들이 인간지식의 완전성을 가정하고 이기적 존재로서의 인간본성을 부정하는 잘못된 전제에 입각한 잘못된 조항들로 지목됐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만한 주장이지만 이에 대한 토론 또한 전반적인 공감 속에 진행됐고 긴장은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토론의 말미에 제기된 문제 즉, 과연 하이에크식 자유주의 헌법이 한국에서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은 통렬해 보였다. 어찌 보면 이제 민주주의의 초입에 들어선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과잉을 우려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 또한 자본주의 진화과정의 일부일텐데 왜 그 부분만 억제돼야 하는가 라는 질문처럼도 들렸다. 이번에는 다행히 앞의 발표와 다르게 발표자의 답변이 허용됐는데 하이에크의 언술을 반복하는 것에 그쳐 조금은 유감스러웠던 기억이다.

개별 발표를 떠나 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발전 과제가 짧은 시간에 제기됐다고 본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발전은 하이에크를 뒤쫓아 사회주의와 대립하는데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유주의와의 대립에서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대부분의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하이에크와 달리 공동체론적 내용을 다소간에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면 역시 다양한 하이에크가 필요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어떻게 넘어갈까 궁금하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기술변화에 따른 이윤율의 조정경로와 기술격차가 기술변화의 속도에 미치는 영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역사와 위기'(함께읽는책 刊), 공저로는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한국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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