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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변, 박 시장, 박원순
[특별기고] 박변, 박 시장, 박원순
  • 교수신문
  • 승인 2020.07.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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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귀국 후 잠시 참여연대를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다. 며칠 전 출간된 책을 그에게 전해달라며 어느 직원에게 맡겨놓았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불쑥 나타난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일벌레로 소문난 사람이지만 그에게선 오만함도 천박함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성과 앞에서 언제나 부족한 점에 먼저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바빠도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사십 대 중반의 사내...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내면 저런 표정과 눈빛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변’과의 첫 만남은 그토록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 날부터 그는 ‘박 시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점차 낯선 사람이 되어 갔다. 진정성을 갖춘 시민운동가는 사라지고 어눌한 말투와 투박한 표정의 아마추어 정치가만 남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장으로서의 업적은 쌓여 갔지만 예전과 같은 당당함과 여유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권력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것 같았던 ‘박변’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재개발 지역 주민을 위해 구청 직원의 모욕을 기꺼이 감내하던 ‘박 시장’이었다. 하지만 박원순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스함조차 전략적 자산 정도로 치부되는 그런 세계에선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박변의 죽음과 박 시장의 죽음과 박원순의 죽음이 나를 찾아왔다.

죽음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을 나는 조금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부적절한 언행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그런 말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그가 의도적으로 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머리로만 배운, 나이 육십의 남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아마도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을 것이라는 말이다. 누구든 그에게 부적절함을 지적했다면 분명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고 고쳤을 그런 사람이란 말이다.

보수-진보 외에는 세상을 달리 보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의 절반을 구하겠노라면 아무에게나 칼을 휘두르는 사람들, 죽은 사람의 살점을 도려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물어뜯고 무엇이든 먹어치울 사람들, ‘입과 성기(性器)만 남은 자들’(류근 시인), 그런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을 향해 자신을 변호하는 박원순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박변도 박 시장도 그런 구차함을 무릅쓰면서까지 삶을 지속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평생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 온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모두 안녕’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내가 알았던 박변답고 내가 좋아했던 박원순다운 작별인사이다.

일 년쯤 지난 후 몇몇이 모여 그를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시민운동가들만 모여서 ‘그곳에선 안녕하신가?’라고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든 가벼운 걸음으로 갈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생기면 참으로 좋겠다.

- 박원순의 죽음을 기리며

 

이충진(한성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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