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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의 동서남북 뮤직톡]보수냐 혁신이냐의 가치는 오선지 위에 답이 있다
[김형준의 동서남북 뮤직톡]보수냐 혁신이냐의 가치는 오선지 위에 답이 있다
  • 김형준
  • 승인 2020.07.27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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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로 하모니 이뤄 미적 가치 창출하듯
추구하는 본질 같다면 한목소리 낼 수 있어야
상대방의 의견 헤아리는 폭넓은 사고 필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법이나 매뉴얼은 형식을 갖춘 것으로 약속 이행을 의미한다. 형식은 디테일하게 구성되고 전체적으로 통일성,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은 악보라는 형식을 통해 하모니를 이루어 미적 가치를 창출하고, 기업 등 조직 구성원들은 매뉴얼에 의한 역할 분담과 협력으로 기업 가치를 창출한다. 일본 노나까 교수는 ‘지식경영’을 설명하면서 “암묵지(暗默知)를 형식지(形式知)로 전환하여 구성원들이 공유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하였다. 

음악은 악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음률이 단순했던 서양음악 초기에는 악보 없이 구전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네우마‘라고 하는 기호를 가사 위에 표기하여 음정을 표시하였고, 이후 4선지를 거쳐 5선지로 발전한다. 음악은 시대 변천에 따라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발전해 왔다.

악보는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기 위한 것이므로 악기의 왕이라 불리는 피아노에 대해 알아보자. 피아노는 이태리 피렌체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17세기 말 발명한 것으로 추측되며 많은 개량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건반은 검은 건반 36개, 흰건반 52개 총 88개이며 나란히 배열한 흰건반 사이에 검은 건반이 2개 및 3개로 짝지어 구성되어 있다. ‘도’자리는 총 8개 있으며 가장 낮은 ‘도‘로부터 네 번째에 위치한 ’도‘를 ’가온 도(Middle C)‘라 부르며 낮은 음과 높은 음역대의 경계가 된다. ’가온 도‘를 기준으로 높은 음을 표시하는 악보는 ’높은 음자리표‘, 낮은 음은 ’낮은 음자리표‘를 사용한다. 

악보를 볼 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을 극복하려면 명칭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도에서 한 옥타브 높은 도 사이에 12개의 음이 있고 흰건반 7개, 검은 건반 5개에 해당한다. 흰건반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이며, 검은 건반은 흰건반에서 반음 올리거나 낮출 때의 음이다. 예컨대 도와 레 사이에 있는 검은 건반은 도에서 반음 올리면 <도 샤프>, 레에서 반음 내리면 <레 플렛>이라 부른다. 이처럼 검은 건반은 같은 자리이면서도 흰건반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리며 이명동음이라 한다. 오선지에 12개의 음을 표기하려면 흰건반의 음을 위주로 하되 조표를 사용하여 검은 건반의 음을 표기한다. 조표란 반음 올릴 때 사용하는 샤프 (#)와 반음 내릴 때 사용하는 플렛 (b)을 칭한다. 다만 미와 파, 시와 도의 간격은 반음이므로 조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즉 미에서 반음 올리면 파, 시에서 반음 올리면 도가 된다.

각 음은 고유 명칭(Tone name)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마다 다르다. 이태리, 프랑스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영미는 <CDEFGABC> 우리나라는 <다라마바사가나다>이다. 조성음악 (Tonal music)에서 으뜸음의 위치에 따라 조가 결정된다. 예컨대 오선지에 샤프가 하나 붙어 있으면 으뜸음이 ‘솔’인 장조로서 영어로는 G장조, 우리말로는 사장조가 된다. <솔=G=사> 즉 같은 음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혼동하기 쉬운 것으로 이태리 음명 ‘라(la)’ 와 우리나라 음명 ‘라’의 표기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단지 한글로 글자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음이다. 이태리 음명 ‘라(la)’는 영미의 음명으로 ‘A’이나, 우리나라 음명 ‘라’는 영미의 음명으로 ‘D’이다. 예컨대 라장조=D장조이며 이태리 음명 la(라)장조가 아니다. 

조표의 개수에 따라 으뜸음의 위치가 다르고 운지법 (손가락 사용법)이 달라지며 곡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예컨대 샤프가 세 개 붙은 곡은 영어로 A Major, 우리말로 가장조가 되며 으뜸음이 A (가)이다. 엄밀히 말하면 반대로 설명해야 한다. 수학 공식을 먼저 외우고 나서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즉 음명 A(가)를 으뜸음으로 삼기 위해서는 샤프를 세 개 붙여주어야 하며 이태리 음명 파, 도, 솔을 각각 반음씩 올려 주면 된다.

일반적으로 샤프가 많이 붙은 곡은 웅장하고 날카롭지만 플렛이 많이 붙은 곡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애국가는 샤프가 3개, 가곡 동심초는 플렛이 4개 붙어 있다. 이에 착안하여 샤프를 진보, 플렛을 보수진영이라 가정해 보자. 진보 진영은 지속해서 샤프 개수를 늘려 나가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보수 진영은 지속해서 플렛 개수를 늘려 나가야 함을 주장한다고 해 보자. 그런데 샤프가 7개 붙은 곡 (C샤프 장조) 은 플렛이 5개 붙은 곡 (D플렛 장조)과 으뜸음이 같다 (이명동음). 한편 플렛이 7개 붙은 곡 (C플렛 장조)은 샤프가 5개 붙은 곡 (B장조)과 으뜸음이 같다 (이명동음). 즉 진보진영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열심히 주장하더라도 이미 보수진영에서 주장한 것이며 반대의 경우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 안위와 국민 행복을 위하고자 하는 본질이 같다면 진영이 다르더라도 한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명분에 집착했던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지 성찰하게 된다.

공연장에서 지휘자가 들어오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음정을 조율할 때 오보에가 첫 음을 내면 여기에 맞추어 다른 악기들이 음을 조율한다. 이때 음이 A (가, la)이며 모든 음의 기반이 된다. 이 음은 바장조 (F Major)일 때는 으뜸음을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지만 가장조 (A Major)일 때는 으뜸음으로서 힘차고 남성적인 음악을 표현하는 우두머리 역할을 맡게 된다. 대신 가단조 (A minor)일 때는 단조의 으뜸음으로서 부드럽고 우아한 음악의 중심이 된다.

현재 우리가 맡고 있는 역할이 보잘 것 없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비전을 세우고 큰 역할을 맡을 때를 대비하여 능력과 자질을 길러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만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을 헤아리는 폭넓은 사고는 마치 음악에서 A (가) 음처럼 모든 악기에서 울려 나오는 음의 기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형준 경영&뮤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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