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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서 블로흐에 이어지는 存在의 길…요청철학의 정초는 어디에
칸트에서 블로흐에 이어지는 存在의 길…요청철학의 정초는 어디에
  • 박우석 과기대
  • 승인 2004.03.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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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퓌지스와 존재사유』(김진 지음, 문예출판사 刊, 2003, 640쪽)

▲ © yes24
박우석 / 한국과학기술원·철학

서구 형이상학의 주요 여정을 살펴보는 기획을 통해 저자는 요청적 사유 구조의 정초를 위한 프로레고메나로 삼고자 했다. 경탄과 시샘의 표적을 자처한 이러한 야심의 토로는 동시에 애당초 불가능한 기획이거나 처절한 실패로 끝난 기획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서설의 가면을 쓰고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칸트의 경우 '순수이성이판'을 낸 이후에야 '미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아닌-존재'의 존재론

철학자가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 학계에서 의연하게 지극히 다양한 학술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저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핵심적 주제가 요청철학의 정초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문제는 저자가 정작 그 요청철학의 정초를 보여 준 적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데 있다. 최소한 문제의 책에서 독자의 기대는 철저히 배반당한다. 결론의 막바지에 가서야 겨우 요청적 사유를 구성하는 선-구조와 거기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특정한 요청 내용을 요구하는 것을 저자가 요청적 사유 구조라고 한다는 새 소식에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화의 미명 아래 대화 실종 증후군이 확산된 지도 이제 백 년이 훨씬 넘은 탓에 소위 철학자들 사이에서조차 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어쩌면 전혀 놀라운 일이 못된다. 그런 배경 하에서 칸트의 요청 이론을 전공한 저자가 지난 십 여 년 동안 다수의 서구 현대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칸트 넘어서기를 시도해 왔다는 점은 높게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제 저자는 과거로 시선을 돌려 최초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헬레니즘 철학을 거쳐 플로티노스, 안셀무스, 아퀴나스에 이르는 서양고중세철학사의 봉우리들을 답사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시의적절하게 아랍철학자들과 소위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전통에 비중 있는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화를 갈망하는 저자의 의도는 진지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고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모할망정 저자의 문제의식과 사유의 흐름을 짐작하기 위해 애써 보도록 하자. 우선 요청 철학의 정초라는 프로젝트가 어떻게 퓌지스와 존재 사유의 여정을 살펴보는 기획으로 연결됐는지를 이해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다시 말해서 정답이 왜 블로흐와의 만남에서 찾아지는지를 이해하는 과제가 될 것이다. 단서는 아마도 칸트 이후의 수많은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서 저자가 왜 화이트헤드, 하이데거, 그리고 블로흐에 주목하는지, 그들은 어떤 공통점을 지니는지를 묻는 데서 찾아질 것이다. 저자는 우선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 그리고 블로흐의 희망철학이 모두 칸트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서 그들은 모두 존재론의 역사를 각각 나름대로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해 갔다는 공통점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그들 중에서도 하필 블로흐가 중요한가. 저자가 깔끔하게 정리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화이트헤드의 존재형이상학적 세계 기술은 칸트적 시각에서 보면 독단주의적 기술로 가득 차 있고, 하이데거는 칸트의 요청과는 대조적인 전회의 방식에 호소한 데 반해, 블로흐는 칸트의 요청적 사유 방법론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저자가 아직도 이데올로기적 대립 속에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과 아직-아닌-존재의 존재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좀더 허심탄회하게 질문했다면…"

그런데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를 떠받치는 물질 개념과 아직-아닌-존재의 존재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개념을 아비체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적 전통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다시 헤겔 변증법과 결합시킴으로써 성립했다고 한다. 형상, 본질, 그리고 현실성 주도적인 주류적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에 맞서 물질 우위론적인 좌파적 전통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자 한다면 형이상학의 여정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 필수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이 책의 1, 2, 3 부는 자기 자리를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의문은 저자가 어떤 점에서 블로흐를 넘어서서 존재론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은 이 책의 4, 5부가 즐거이 읽을 수 있는 유용한 논문들로 채워진 데 비해 1, 2, 3부는 제 9장을 예외로 한다면 서양철학사 입문서 수준이라고 하는 심각한 불균형에 대한 당혹감에서 비롯된다. 아마도 무지한 독자들에게 논의를 따라가기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친절을 베푼 것이리라 믿어지지만, 아랍철학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 좌파에 대한 심층적 연구에 집중하는 편이 정도였으리라 믿는다. 같은 관점에서 실상 칸트를 다룬 제 4부의 네 장도 칸트의 요청 이론을 논의하는 데 바쳐지는 편이 훨씬 나았으리라 여겨진다.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해 어디까지 감추고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이왕 내밀한 지적 편력을 반추하는 마당에 좀더 허심탄회하게 모르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는 뉴욕 버팔로주립대에서 '이것임과 전라특수자: 둔스 스코투스의 개체화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철학사 전반을 연구대상으로 특히 논리철학과 형이상학에 관한 논문을 많이 발표해왔다. 저서로 '철학사와 철학', '중세철학의 유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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