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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滿 한인사 지평 넓히다
在滿 한인사 지평 넓히다
  • 신주백 한국교원대
  • 승인 2004.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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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동아시아의 민족이산과 도시』(윤휘탁 외 지음, 역사비평사 刊, 2004, 378쪽)

▲ © yes24
청탁을 받을 때 가급적 '주례사 서평'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얼마나 편집자의 의도에 충실할 지 자신이 없지만, 청탁의 의도에 부응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네 명의 공동필자가 "한국인만 따로 분리해", "고립적, 파편적 방식으로 특정 민족의 특정 운동"에만 주목했던 그동안의 연구경향을 비판하며, 도시지역의 조선인사를 연구한 국내외의 첫 성과다. 이 책은 전시기의 이민사를 다룬 '제1장 개관'과 더불어 봉천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省都였던 봉천, 장춘·신경, 하얼빈을 한 사람씩 맡아 집중적으로 정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네 명의 공동필자 가운데 한국사를 전공한 연구자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연구성과가 거의 무시되면서 잘못된 지적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10년대에 다수의 조선인이 중국인 배일운동의 표적이 됐다든지, 1925년의 미쓰야협정을 '전만주'의 '조선인 일반을 대상'으로 한 협정처럼 설명한다든지, 1924년의 시점에서 장작림군벌이 재만조선인문제를 주도했는데도 '중국정부'가 한 것처럼 잘못 설명했다.

또 운동사 관련 서술도 이에 못지 않은데, 가령 1920년대 중반경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다는 평가, 김일성이 소련으로 월경한 시기를 1940년 8∼10월로 언급한 점, '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가 하얼빈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언급, 그리고 해외독립운동가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남한 건국의 주역이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20세기 전반 만주 조선인 이민사회를 내부로는 다양한 민족집단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외부로는 조선이나 일본, 중국 등과의 연관관계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본문 25쪽에서

이 책은 만주국 시기 조선인을 연구했으므로 1938년의 '제3차 조선교육령'부터 1944년의 신체검사와 징병제로 이어지는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에 반드시 주목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거의 무시되고 있다. 더구나 이 정책을 만주와 한반도, 또는 만주 내에서의 도시와 농촌, 아니면 세 도시와 연변을 비교해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만주국 시기 조선인의 상태를 언급하겠다는 의도를 제대로 살리고, 그때의 경험이 남한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평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들이 오히려 '고립적'이고 '파편적'인 연구만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끝으로 평자도 책을 쓰면서 어려워했던 문제이기는 한데, 만주라는 특정 지역을 연구하는 연구서에서 지리적 공간범주가 대단히 자의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한 가지만 들면, 책에서는 간도, 서간도, 동간도, 남만, 북만, 중만, 남만주, 북만주, 남부만주, 북부만주, 남만주지방과 '남만주 전체'라는 용어가 나온다.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저 감으로만 알 수 있겠다.

이상의 미흡한 점은 있지만 이 책은 두가지 성과를 거뒀다. 첫째, 조선인 역사의 지리적 공간을 넓혔고, 민족협화정책의 기만성을 밝혀내는 등 만주지역 조선인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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