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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없는 각론은 맹목일 터
총론 없는 각론은 맹목일 터
  • 최진덕 정문연
  • 승인 2004.03.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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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주자사상과 조선의 유자』(주자사상연구회 편, 혜안 刊, 2003, 294쪽)

▲ © 리브로
최진덕 한국정신문화연구원·철학

정치권력이 주자학을 이용했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주자학이 정치권력을 이용했다고 해야 옳을 정도로 조선조는 '주자학의 왕국'이었다. 조선조의 모든 것이 주자학으로 환원될 수는 없으나 조선조의 어떤 것도 주자학을 모르고는 제대로 이해되기 어렵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주자학 연구수준이 만족스럽다고 보기 어렵다.

연세대 출신 소장 내지 중진학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주자사상연구회에서 회원들의 연구논문을 모아서 펴낸 이 책은 우리 학계의 주자학 및 조선조주자학 연구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자사상연구회는 10년 넘게 '주자문집'을 강독해왔고, 그 성과가 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주자학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주자가 남긴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독해를 기반으로 개론 수준의 주자학 이해 혹은 오해를 극복하고(1부), 더 나아가 주자학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기반으로 조선조주자학 내지 조선조사상사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2부)는 점이다.

"윤휴는 주자의 '효경' 해석에서 떠나 초기 '효경'의 성격을 재음미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론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것은 군권 절대화의 이념과 연관돼 있었다."-본문 193쪽에서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논문은 어느 것이나 주자학 내지 조선조주자학에 대한 전문적인 각론으로서 별 손색이 없다. 막연한 주관적 인상을 근거로 주자학을 통째로 비난하거나 예찬해온 것에 비한다면 큰 진전인 셈이다. 각론이 없는 통론은 공허하다. 이 책은 각론에 대한 그 동안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그러나 각론의 축적이 내실있는 통론을 반드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주자학의 다양한 담론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담론만 따로 떼어놓으면 해석 자체가 어려워진다. 전문적인 각론에 치중하면서 주자학을 파편화시킬 경우 주자학의 전체상은 자꾸 요원해지고, 각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통론이 없는 각론은 맹목이다.   

각론과 통론은 부분과 전체처럼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 있으므로 각론이 깊어질수록 통론도 함께 깊어져야 마땅하다. 주자의 짧은 텍스트 하나를 분석하더라도 반드시 주자학의 다른 담론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더 나아가 주자학은 주자학 아닌 것들과도 연계돼 있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미시적인 문헌학적 분석은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거시적인 철학적 종합과 함께 갈 때 주자학 연구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담론일 수 있다. 사실 거시적인 철학적 종합은 문헌학적 분석의 한계를 넘어 학문적 기만과 손잡을 위험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마냥 회피한다면 문헌근거에 의거해서 거짓말을 하는 능력이라 규정할 수 있는 우리의 학문적 상상력은 고사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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