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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문: 펨토과학
새로운 학문: 펨토과학
  • 이종민 광주과기원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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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분의 1초'가 여는 세계

이종민/광주과학기술원·레이저분광학

펨토과학은 펨토초영역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생물학적 자연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이다. 여기서 펨토초(femtosecond)는 시간의 단위로서 1펨토초는 1,000조분의 1초(10-15초)에 해당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계적인 방법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시간분해능인 밀리초(1,000분의 1초)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그리고 최근에는 피코초(1조분의 1초)의 시간분해능으로 고속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극초단 레이저 광원 개발에서 시작

과학자들은 실시간으로 물질내의 분자들이 형성되고 반응하면서 일어나는 원자들의 실제운동을 관측하려 했지만 이는 아주 어려운 과제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결합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깨지거나 형성되며, 또한 위치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질 내에서의 원자의 운동속도는 약 1 km/sec 정도에 이르며, 옹스트롬(Å: 1Å=10-10 m) 정도의 거리에서 원자영역의 동역학을 기록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약 100펨토초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물질의 평형상태에 이르기 전의 상태를 연구하거나 원자나 분자의 진동운동과 회전운동보다 빠른 상태에서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변화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펨토초 영역의 시간 분해능이 필요하므로 피코초의 분해능을 갖는 전자기술로는 이런 현상을 관측할 수 없다.

그러나 1970년대에 펨토초 영역의 펄스폭을 갖는 극초단 레이저 광원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펨토초의 시간분해능으로 초고속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이 레이저는 펄스폭이 짧다는 특성뿐만 아니라 출력이 높다는 특성을 갖는데, 이후 레이저 기술의 발달로 두 특성이 더욱 개선됐으며, 이를 통해 극초단 레이저의 응용분야는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IT, BT, NT 등 까지로도 크게 확대됐다.

여기서 펨토과학의 응용분야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하면 다양한 종류의 물질에 미세한 절단이나 천공 같은 가공을 할 수 있다. 레이저의 짧은 펄스폭이 가공지점 주변에 손상이 발생하지 않게 하며, 매우 높은 광 세기는 물질 내에 다광자 흡수가 가능하게 해 가공의 정밀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투명한 물질의 가공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펨토초 레이저 가공은 미소 기계장치의 제작이나 도파로, 3차원 광자 결정, 광 정보 저장 소자 같은 광통신 소자의 제작에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체 조직이나 치석, 암세포 등의 선택적 제거에 적용하여 안전하고 깨끗한 치료를 실시할 수 있다.

이 레이저를 이용해 OCT(Optical Coherence Tomography)나 공초점 현미경 같은 단층영상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는데, 이런 시스템들은 전자현미경 같은 기존의 영상기법과 달리 인체에 전혀 무해하기 때문에 의료분야에서 매우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암세포 선택적 제거, 천체물리연구에 활용

최근 극초단 펄스 레이저 기술의 발전으로 수 테라와트(Terawatt, 1 TW =  1012 Watt)급의 펨토초 레이저 발생이 가능하게 됐으며 이 레이저광을 집속시키게 되면 1020 W/cm2 이상의 출력강도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초고출력의 전기장 하에서 많은 새로운 물리현상들이 예측 또는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초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하면 이제껏 어떠한 방법으로도 얻지 못했던 엄청난 전자기장과 압력, 온도를 얻을 수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물리현상을 연구 조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레이저폭발에 의해 생성된 플라즈마가 지구 자기장 내에서 어떻게 거동하는지를 조사함으로써 우주 폭발에 대한 모델을 수립하는 연구와 같은 천체물리연구를 실험실에서 수행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차세대 입자가속기로 인식되고 있는 레이저 가속기의 개발에도 이용될 수 있다. 기존의 가속기는 전기적 절연 파괴 등의 문제로 100MeV/m의 가속 기울기밖에 낼 수 없는데 반하여 레이저 가속기는 이미 실험적으로 이보다 1,000배나 큰 100GeV/m의 가속 기울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이 증명됐다.

이상과 같이 광범위한 응용분야를 갖는 펨토과학의 연구를 위해 광주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서는 2003년부터 연구기반 구축 사업으로 향후 6년간 4백80억 원을 투자해 페타와트(Petawatt, 1 PW = 1,000 TW = 1015 Watt)급 펨토초 레이저 시스템을 갖춘 '극초단 광양자빔 연구 시설'을 세계에서 6번째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 시설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연구 그룹이 각각의 연구주제를 갖고 창의적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분야별 개방 연구실을 갖출 예정이며, 레이저 출력도 sub-테라와트급부터 페타와트급까지 다양한 출력을 이용할 수 있는 각각의 실험실들을 구축할 예정이다. 현재, 1차년도 사업으로 구축되고 있는 1TW 이하 저출력 시설과, 10TW급 시설은 2004년 6월까지 구축이 완료돼 7월부터는 외부 사용자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며, 2009년까지 페타와트급 시설을 구축해 G-6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설이 갖춰지면 우리나라도 물리, 화학, 생물, 의료학 분야 연구 및 산업적 기술개발 분야 등의 본격적인 펨토과학기술 연구가 이뤄질 것이며, 미국, 일본, 불란서, 중국 등에 이어 광기술 선진국 진입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는 레이저 및 레이저 분광학, 레이저 응용기술개발 등을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과 특허를 발표 및 취득했다. 현재 광주과기원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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